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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이 얇은 인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 외>를 읽고.


도스토예스프스키의 중단편집 <백야 외>를 읽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을 훔치고 싶다. 낭만주의적으로 과장돼 있을지언정, 이 인물들은 살아있다!



<약한 마음>의 바샤 슘꼬프를 보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남자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해 정신을 파느라 해야할 일을 제 시간에 하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쏟아진 행복과 일을 마무리해야한다는 의무감에 동시에 짓눌린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이같이 크나큰 행운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줄곧 의심한다. 결국 그의 '약한 마음'은 상황은 통제하지도, 견디지도 못한다. "팽!"하고 그의 신경줄이 끊어진다.

<정직한 도둑>의 가난뱅이 에멜랴도 비슷하다. 잠자리를 빚지고 있는 야스따피 이바노비치의 물건을 우발적으로 훔친 그는 그 양심의 가책 때문에 지나치게 괴로워한다. 평생을 맞으며 살아온 개처럼, 그는 야스따피 이바노비치의 눈치를 본다. 야스따피 이바노비치는 에말랴를 용서하지만, 에멜랴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결국 죽는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괴로워하는 인물. 다르덴 형제와 그들의 영향을 받은 여러 감독들이 2000년대 내내 영화에서 그려내던 소재다. 감성과 윤리의 보호막이 취약한 이들, 그래서 사소한 잘못이나 악행에 노출됐을 때 격렬한 반응을 하는 이들, 그 반응을 견뎌내지 못하는 이들, 선하다기보다는 약한 이들. 현대사회의 인간이란 평균적으로 낯이 두꺼워져 이런 사람이 드물겠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이런 인간들을 찾아 살려내는 건 픽션 창작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