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

 필립 볼 지음·정옥희 옮김/살림프렌즈/420쪽/1만5000원


훌륭한 회화나 시를 접하면서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활짝 웃는 미녀를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매끈한 스포츠카를 타거나 일류 요리사의 음식을 먹을 때 ‘아름답다’고 외쳐도 탓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화학 실험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네이처>지 편집고문이자 영국왕립화학회 연구원인 필립 볼은 ‘화학적 미학’을 이야기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를 먹고 어린 시절로 향하는 기나긴 회상을 시작했듯이, 볼은 벤젠의 달작지근하고 씁쓸한 냄새를 맡는 즉시 시공이 다른 세계로 떠난다고 한다. 계란이 썩을 때 나는 황화수소의 고약한 냄새, 소변의 알싸한 암모니아 냄새, 이산화황의 눈물이 괴는 신랄한 냄새 등도 곧바로 지난날의 무언가를 환기한다. 냄새 뿐만이 아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유명한 신경과 의사 올리버 색스는 의사 아버지가 집에 마련해두었던 체리색, 황금색, 보라색, 녹색 도찰제의 추억을 말한다. 화학자 로버트 우드워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화학에 이끌린 데는 화학의 감각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나는 결정과 그 형태의 아름다움에 빠졌습니다.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도 너무나 아름다웠고, 액체에 잠복해 있다가, 끓다가 마침내 톡톡 튀어 오르다가, 휘감겨 올라가는 모습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원제 Elegant Solutions)은 실험실에서 극도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화학자들의 이야기다. 워낙 열심히 실험에 몰두했던 이들을 두고 ‘화학 오타쿠’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물론 화학자들이 ‘아름다움 그 자체’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과학사에 남을 정도로 빼어난 화학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다보면, 그 실험은 절로 아름다움을 뽐낸다. 볼은 창의, 기품, 끈기, 상상, 재간 같은 품성이 발휘된 10가지 화학 실험과 그것을 가능케한 화학자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실 서양의 역사에서도 실험은 천대받았다. 화학 실험에선 연금술사나 악마의 힘을 빌리려는 마술사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까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화학자는 아마 <개구쟁이 스머프>의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 역시 실험보다는 추상적 사고로 지식을 얻으려 했다. 실질적으로 화학 실험을 해 염료, 알칼리, 비누 등 실용품을 제조하는 것은 장인이나 무역 상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추상적 사고로는 결코 깊이 있는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며 “자연을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직관’은 좀처럼 신뢰하기 어려운 도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실험실을 떠나지 않는 과학’인 화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의사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는 물을 만물의 근원 물질로 본 창세기의 전언을 실험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마침 종교 재판을 받아 자택 연금중이던 헬몬트에게는 시간이 매우 많았다. 그는 화덕에서 말린 200파운드의 흙을 화분에 담고 5파운드 무게의 어린 버드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들어가지 않도록 주석을 입힌 철판으로 뚜껑을 만들어 흙 위를 덮었다. 뚜껑에는 물과 공기가 통하게 구멍을 냈다. 


그리고 5년을 기다렸다. 헬몬트는 버드나무와 흙의 무게를 쟀다. 흙의 무게는 200파운드에서 2온스 부족했지만, 버드나무는 “물만 먹고도 줄기와 껍질과 뿌리가 도합 164파운드였다”고 적었다. 그래서 버드나무는 물만 먹고도 그렇게 자라났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는 나무가 물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잎이 대기 중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광합성을 한다는 점을 알지만, 헬몬트 실험의 우수성은 그것의 ‘명료함’과 ‘수량화’에 있다. 그는 논리적 사고와 수학적 추상 대신 관찰과 실험을 토대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한국의 독자에게 가장 익숙할법한 화학자는 마리 퀴리다. 폴란드 태생의 마리 퀴리가 성공하기 위해선 다른 과학자보다 훨씬 큰 장애물을 하나 더 뛰어넘어야 했다. 바로 그녀의 성별이었다. 여성에게는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19세기 말엽, 여성이 과학사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1903년 마리 퀴리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을 때도, 언론은 피에르를 거쳐서 마리를 취재했다. 피에르가 먼저 세상을 뜨고 몇 년 뒤, 파리의 신문들은 마리와 동료 과학자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라듐의 불꽃이 한 과학자의 가슴에 불을 지피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남성 과학자였어도 언론은 같은 반응이었을까. 


퀴리 부부의 화학 실험은 오늘날 관점에서 ‘막노동’에 가까웠다. 저자는 그들의 실험에서 ‘인내심’이라는 미덕을 발견한다. 퀴리 부부는 역청우라늄광에 숨은 미지의 원소를 분리하기 위해 용액에서 생성된 물질을 결정화하고 이를 세척한 다음 다시 용해시키고 결정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반복했다. 라듐을 얻기 위해 우라늄 광산 인근에 버려진 찌꺼기 10t을 실어왔는데, 여기에는 온갖 쓰레기와 나뭇 가지들도 함께 들어있었다. 퀴리 부부는 넓은 창고를 실험실로 삼은 뒤 라듐을 분리하는 ‘무지막지한 실험’을 시작했다. 마리는 하루 종일 자신의 몸만한 쇠젓가락으로 끓는 용액을 휘저었다. 수년에 걸친 고생 끝에 얻어낸 물질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발광체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한밤중의 작업실에 나간 퀴리 부부는 빛으로 반짝거리는 유리관을 “동화 속 요정의 빛나는 날개” 같았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당시는 방사능의 유해성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기 전이었다. 퀴리 부부는 노벨상 수상식에도 못갈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것이 실험 결과 나온 방사성 물질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들의 실험일지는 지금도 방사능이 강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시름시름 앓던 피에르는 마차 사고를 당해 먼저 세상을 떴고, 마리는 남편의 자리를 이어받아 소르본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됐지만 삶의 의욕을 온전히 되찾진 못했다. 



마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


모든 과학자들이 퀴리 부부처럼 유명세를 멀리한 채 실험실에만 머무는 과묵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루이 파스퇴르는 과학자로서 뛰어났지만, 대중에게 업적을 알려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데도 수완을 발휘했다. 파스퇴르의 사위 르네 발레리라도는 훗날 쓴 장인의 전기에 파스퇴르가 주선산나트륨암모늄의 결정 모양을 발견한 순간 실험실 문을 박차고 나가 복도를 지나던 건물관리인에게 자신의 위대한 발견을 알렸다고 썼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도도하면서도 깍듯한 사람이었기에, 이같이 흥분해 “유레카!”를 외치는 모습은 상상이 어렵다. 파스퇴르 역시 이 전기를 읽었지만 전 대목에 걸쳐 승인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던 파스퇴르는 과학적 발견의 순간을 낭만적으로 재구성하는 당대 관습을 즐겼던 것이다. 


실제 19세기 화학자들 중에는 낭만주의 문학에 정통한 이들이 많았다. 괴테, 워즈워스, 콜리지 등 문인과 교류한 화학자도 있다.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낮잠을 자다가 꾼 꿈 속에서 원소 주기율표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고, 프리드리히 케쿨레 역시 자신의 업적을 꿈 속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의 꿈 이야기는 자신들의 업적이 동시대 학자들의 업적에 바탕해 꽃핀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떨어진 듯 독창적인 것임을 주장하는 알리바이로도 사용된다. 볼은 ‘최초의 발견’에 대한 이러한 신화는 우리의 삶 속 공휴일, 기념일, 스포츠 행사 등의 ‘꾸며낸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고 있다. “어쨌든 우리도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루이 파스퇴르


현대의 예술 작품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예술가 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기술자들에 의해서 지탱된다.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알파입자를 연구하기 위해 찾은 이는 맨체스터 대학 근처에서 실험장비 점포를 운영하는 유리 실험기구 제작자 오토 바움바흐였다. 바움바흐는 러더퍼드의 주문대로 두께가 수백분의 1㎜인 유리 모세관을 제작했다. 이 모세관이 없었다면 러더퍼드의 실험 역시 성립될 수 없었다. 볼 역시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기 위해 이론적인 연구 프로젝트 뿐 아니라 유리공작을 수강해야 했다고 덧붙인다. 


위대한 발견을 위해선 때론 아이같은 순진함과 대담함이 필요하기도 하다. 시카고 대학 대학원생 스탠리 밀러는 지도교수 해럴드 유리에게 원시 지구 환경을 재현해 생명 탄생의 조건을 살피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이미 노벨상 수상자였던 유리 교수는 이 실험이 학문적으로 유용한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리므로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는 걸맞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밀러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유리는 6개월~1년만 실험하는 조건으로 제자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리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실험시작 1주일만에 생명 탄생의 전제가 되는 유기화합물이 충분히 나왔다. 밀러는 망신을 두려워해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실험을 설계했고, 이후 생명의 기원에 대한 대답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에서도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은 되도록 삼갔”다고 했지만, 과학 비전문가가 복잡한 화학 실험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다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해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언론에 발표되지만, 그들의 연구 업적을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과 비슷한 이치같다. 그래도 위대한 과학적 업적 뒤에 있는 학자들의 열정과 인간적 결함을 살피는 재미는 쏠쏠하다. 그리고 <실험에 미친 화학자들의 무한도전>이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머리로 추상하는 것 뿐 아니라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