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호프만은 무력한 남자입니다. 그는 젊어서 무력했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무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무력하기에, 스크린 속 호프만의 모습에 연민을 느낍니다.



영화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의 더스틴 호프만. (경향신문 자료사진)

올해로 73세인 호프만이 주연을 맡은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가 28일 개봉합니다. 극중 호프만의 처지는 처량하기 그지없습니다. 뉴욕에 사는 광고음악 작곡가인 그는 런던에서 열리는 외동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딸은 신부 에스코트를 새아버지에게 맡기고 싶어합니다.
뉴욕의 회사에서는 ‘이제 그만 쉬라’며 퇴사를 종용합니다. 돌아갈 곳도, 남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 그는 역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여자를 만납니다. 호프만의 상대역은 영국 배우 에마 톰슨입니다.


호프만은 영화 내내 무기력합니다. 가족관계, 직장, 연애 무엇 하나 원만치 않지만, 꼬인 매듭을 스스로 풀 능력은 없어 보입니다. 분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호프만의 노쇠한 얼굴이 영화 속 남자의 처지를 더욱 애처롭게 합니다.


비슷한 시기 배우 활동을 시작해 ‘미국 영화의 얼굴’ 노릇을 했던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와 비교해도 호프만은 특출한 카리스마를 보인 적이 없습니다. 파치노와 드니로는 특유의 열연과 위압적인 분위기로 스크린을 통째로 장악하는 배우였습니다. 두 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마피아나 형사 같은 남성적 역할을 즐겨 맡았습니다.
그러나 호프만은 폐병에 걸린 포주(미드나잇 카우보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워야 하는 남자(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배역을 맡지 못하는 배우(투씨), 자폐증 환자(레인맨)였습니다. 심지어 악당 후크 선장으로 분했을 때조차 그는 풍성한 가발로 백발을 간신히 감추는 늙은이였습니다.
관객은 파치노, 드니로의 카리스마를 바라보며 찬탄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까이 갈 엄두는 내지 못합니다. 소시민인 우리로서는 비범한 이들과 엮였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두렵기 때문이죠. 호프만은 다릅니다. 그는 평범하다 못해 나약해 오히려 먼저 다가가 위로해줘야 할 사람 같습니다.


영화 속 호프만은 소소한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지언정 큰 성공을 거두진 못합니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템스강 주변의 낙엽길을 함께 걷는 중년 남녀를 보여주면서 마무리되지만, 늦가을보다 늦게 시작한 둘의 연애가 어떤 결실을 거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들도 대개 성공하지 못합니다. 134만명의 지원자를 물리치고 ‘슈퍼스타’가 된 한 가수 지망생의 성공기는 우리 대부분에게 성공이란 134만분의 1의 확률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장치입니다.


그냥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체념’이라고, 누군가는 ‘달관’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때 우리 곁에 호프만과 키를 맞추기 위해 힐을 벗은 채 맨발로 걷는 톰슨 같은 동반자가 있으면 큰 힘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