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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지금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역시 때늦은 업데이트.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갈등이 봉합됐다. 영화계 내 일부 강경세력은 여전히 불만을 표한다. 이후 전개 양상을 두고볼 일이다. 


<다이빙벨>은 영화사에 남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거칠고 엉성하고 자기과시적이다. 영화의 목적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함인지, 큰 차원에서의 국가 개혁을 위함인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 감독의 말마따나 “어쭙잖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작은 <다이빙벨>이었다. 20년 역사를 지닌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 부산을 넘어선 한국문화계의 소중한 자산, 세계의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아시아 영화의 창구, 무엇보다 세계의 그 어느 영화제도 넘볼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가진 행사가 좌초 위기를 맞은 건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다이빙벨>의 상영을 막으려 한 때부터였다. 

정치인이자 관료인 서 시장으로선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다이빙벨>은 참사 직후의 울분에 가득 찬 영화다. 합리적인 해결책이나 이성적인 대응방식은 찾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목마른 사람조차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이빙벨>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300여편의 영화 중 하나였을 뿐이다. 영화제에는 <다이빙벨>보다 더 큰 논란을 부를 만한 영화도, <다이빙벨>보다 못 만든 영화도 많다. 심의 당국이 인상을 찌푸릴 영화도, 무심코 입장권을 산 관객이 거세게 항의할 영화도 있다. <다이빙벨>은 그런 수많은 영화들 중 한 편이었고, 그렇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상영됐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골라 상영해왔던 영화제 집행위가 선택한 이상 조직위는 그 안목을 믿어야 했다. 심지어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을 요청했을 당시 서 시장은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다이빙벨




서 시장은 영화제가 완전히 검증된 영화만 상영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합리적이고, 따뜻하고, 성숙한, 그래서 누구라도 만족시키는 영화만이 상영되길 원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예술은 종종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수만번의 헛발질을 한다. 목불인견의 작품이 대다수다. 그렇게 수많은 졸작 중에 단 한 편의 걸작이 불현듯 탄생한다. <다이빙벨> 이후 한국 영화인들은 여러 편의 세월호 관련 작품을 내놨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언젠가 세월호를 다룬 위대한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다이빙벨>은 그 초석이었을 뿐이다. 

부산시는 내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다이빙벨> 문제가 불거진 건 2014년이었고, 지난해엔 별 갈등 없이 영화제를 치렀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이 <다이빙벨> 상영 중단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진 ‘탄압의 프레임’이 이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좌우했다. 예산, 조직, 인력 등을 둘러싼 부산시와 영화제 간 갈등이 모두 이 프레임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압의 프레임’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서 시장 자신이었다. 

얼마전 부산시는 평소 접촉이 없던 서울 지역 영화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했다. 김규옥 경제부시장이 나와 그간의 사태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을 밝혔다. 김 부시장은 부산시와 영화제를 언론사의 발행인과 편집국의 관계에 비유했다. 발행인은 편집국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행정·예산의 측면에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부산시 역시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되, 잘못된 행정·예산의 운용 관행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비유를 고스란히 이용하자면, <다이빙벨> 사태는 발행인이 편집국장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사를 빼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그것도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제대로 된 언론사라면 한바탕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발행인이 기자들에게 사과하고 남을 사안이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은 <다이빙벨> 사태에 대해 사과는커녕 그 흔한 유감 표명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누굴 바보로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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