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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평범한 괴물,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인터뷰



잘 나가고 있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인터뷰. 개봉 7일만에 660만 관객 동원. 


부산행 KTX 속 좀비를 보기 위해 개봉 첫 주에만 530만 관객이 몰려들었다. 이번주 예매율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부산행>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던 연상호(38·사진)의 첫 실사 연출작이다. 그는 음울하고 기괴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에서 한여름 쾌속 질주하는 흥행대작 <부산행>으로 옮겨타는 극적인 변신을 했다. 연상호 감독을 최근 만났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이준헌 기자




- 왜 좀비영화인가. 

“좀비영화가 아니라 좀비가 좋았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은 초인이다. 능력치가 높다. 좀비는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대단히 공포스럽다. 난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영화 만들 때도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 <돼지의 왕> <사이비>도 그런 이야기다.”

- 좀비영화 팬들은 어떤 반응일까. 

“마니아들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지만 두렵진 않다. 좀비가 빠르냐 느리냐, 감염경로는 어떤가 등의 세세한 설정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바이러스만 해도 인간이 완벽하게는 모른다. 감기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지 않은가. 미지의 바이러스를 논리화시키는 것 자체가 공포를 중화시킨다고 생각한다.”

- 서구 하위문화의 산물인 좀비를 한국영화 풍경 속으로 접목시킨 방법은. 

“좀비를 그대로 가져다 놓으면 이질감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좀비를 한국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과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마네킹도 일종의 좀비다. 끝없이 노동하고 무표정한 것이 바로 좀비이기 때문이다. 특수효과팀에도 좀비를 괴물이 아니라 어딘가 다치거나 아픈 사람들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연상호는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가 투자배급사 NEW의 제안을 받아 실사영화를 찍기로 했다. NEW는 <서울역>을 실사영화로 만들자고 했으나, 연상호는 <서울역>은 그대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별도의 실사영화를 찍자고 역제안했다. 그 결과가 <부산행>이다.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 성격을 띤 작품으로, 내달 18일 개봉 예정이다. 

- 왜 실사영화에 도전했나.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때도 ‘실사로 찍지 그랬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죽어도 애니만 하겠다’고 버티는 모양이 우스운 것 같아, 언젠가 실사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이들이 <돼지의 왕> <사이비>의 실사 버전을 찍으라고 권유했지만, 난 애니를 다시 실사로 옮기고 싶지는 않았다. <돼지의 왕> <사이비>는 캐릭터가 강하고 스토리의 변곡점이 분명한 영화다. 난 글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 아닌, 액션을 통해 뉘앙스를 만드는 실사영화를 하고 싶었다.”

- 좀비가 짐승떼처럼 몰려온다거나, 좀비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물리치는 액션 설계가 인상적이었다. 





- 배역이 평면적이고 기능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처음부터 다소 전형화된 인물을 기획했다. 관객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원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에 성격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산행>의 진짜 캐릭터는 사람이 아니라 ‘좀비가 탄 열차’다.”

- 공유, 마동석의 이야기는 결국 ‘가족’으로 수렴된다. 

“내겐 가족이 너무나 중요한 테마였다. <부산행>은 ‘<더 로드>의 상업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부산행>도 원안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는데, 아역 김수안을 캐스팅한 뒤 딸로 바꿨다. 아포칼립스, 사회종말과 대비시킬 수 있는 요소는 가족이라는 사회의 최소 단위다.”

- 듣다보니 <서울역>이 궁금하다. 

“<서울역>은 노숙자가 주인공이다. <부산행>의 노숙자는 거기서 나온 캐릭터다. 노숙자는 소시민도, 좀비도 아닌 중간 존재다. <서울역>은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일각의 마음들을 주제의식으로 끌어올린 영화다.”

- 차기작도 실사영화인가. 

“일단은 실사영화를 할 것 같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떠난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부산행>을 했다고 해서 ‘성장 중심’의 연출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 해볼 가치가 있는 걸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