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진취적이고 굳센 의지를 가진 여성상, 적당히 음산하고 기괴한 고딕 분위기, 소설 중반 이후까지 지속되는 미스테리,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는 낭만성 덕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책이며, 여태껏 22번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읽어보면 현대 독자가 받아들이기엔 터무니없는 설정들이 있다. 브론테가 태어난 이듬해 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그런 황당한 설정이 전혀 없다는 점, 현대의 독자를 빨아들이고 현대의 작가를 반성하게 할만큼 합리적이라는 점, 그런 점이야말로 브론테의 '무리수'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로체스터가 "끔찍하리만치 못생긴" 집시 노파로 변장해 제인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점을 쳐주겠다며 접근하는 대목. 로체스터는 점을 쳐주면서 자신에 대한 제인의 속마음을 떠본다. 멀쩡한 부잣집 남자가 집시 할머니로 분장해 목소리까지 바꾸는데, 하루 전까지 그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전혀 못알아본다는 설정하며, 황당하게 속마음을 들킨 제인이 별 화를 내지도 않는다는 것하며, 이상하기 짝이 없다. 

또하나의 문제는 종반부 제인이 세인트 존의 열정 혹은 독선 혹은 광신에 거의 넘어가 그와 결혼해 인도로 선교 활동을 가기로 결정하는 순간, 자신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는 설정. 그건 마음의 목소리도 아니고, 실제 제인이 그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 나오는데, 제인은 그 순간 "어디 계세요"라고 외쳤고, 실제 마차로 며칠 거리에 떨어져있던 눈먼 로체스터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제인의 이름을 불렀고, 제인의 답도 들었다는 설정. 낭만주의 로맨스 소설이 순긴간에 텔레파시의 존재를 증명하는 SF로 장르를 바꾸는 대목이다. 

게다가 제인의 행동에도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 제인은 주제넘게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세인트 존에게 인근의 상냥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인 로저먼드와의 결혼을 대뜸 제안한다.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잘 어울리겠다는 감에 의지한 발언이긴 하지만, 그래도 술자리에서 이상한 분위기로 몰아간 뒤 장난으로 "결혼해! 결혼해!" 외치는 것도 아닌 마당에 무슨 오지랖인가.

얼마전 본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제인 에어>는 이런 황당한 대목들을 잘 정리해(삭제해) 각색했던데, 누가 이 대목들만 이어붙여 기발한 패러디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결론은 제인 에어가 아니라 제인 오스틴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