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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북'이냐 '레전드 오브 타잔'이냐. 디즈니냐 워너냐.



난 <정글북>보다 <레전드 오브 타잔>이 낫던데. 


옛 인기작을 현대에 되살릴 때 마주치는 난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만들기’다. 빨간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나는 기자(슈퍼맨)나 마천루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청소년(스파이더맨) 이야기를 21세기 영화로 만들기 위해선 믿을 만한 설정, 인물의 강렬한 개성이 필요했다. 

정글에 홀로 남겨져 늑대 무리에 의해 키워진 아이 이야기(정글북)는 어린이용이었다. 동물들이 말을 해도 어린이 관객을 위한 것임을 전제하면 더 이상의 개연성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설정의 ‘타잔’은 난감하다. 가죽 팬티만 입은 건장한 성인이 괴성을 지르면서 동물을 다스리는 이야기다. 관객을 당황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9일 개봉하는 <레전드 오브 타잔>은 100여편의 영화, 300여편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제작된 ‘타잔 시리즈’의 21세기 판본이다. 그레이스토크 경(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은 영국 정부의 사절로 콩고에 다녀와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과거 콩고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경험이 있다. 망설이던 그레이스토크는 역시 유년기를 콩고에서 보낸 아내 제인(마고 로비)과 함께 아프리카로 향한다. 

하지만 이는 그레이스토크를 숙적 음봉가(디몬 하운수)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음봉가가 다스리는 지역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려는 벨기에 특사 레온 롬(크리스토프 왈츠)의 계략이었다.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의 장면들. <스펙터>에서도 그렇고 크리스토프 왈츠는 '조용히 말하는 악당'으로 자리매김하기로 한 듯. 





제작진은 타잔 시리즈를 현대에 어울리는 영화로 되살리기 위해 몇 가지 수를 냈다. 먼저 그럴듯한 역사적 배경을 깔았다. 서구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해 통치하기로 결정한 1884년 ‘베를린 회의’를 언급하고, 이후 벨기에가 콩고 전역을 광산화, 노예기지화하려 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레이스토크의 아프리카행을 부추기는 미국인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사무엘 L 잭슨)는 노예해방의 수혜를 받은 흑인이면서, 남북전쟁, 멕시코전쟁 등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그는 미국의 서부 팽창 과정에서 인디언 살육전에 참여했다는 죄의식을 품고 있기에, 어떻게든 유색인종 착취를 막으려 한다.

그레이스토크, 일명 타잔은 유럽인, 아프리카인, 그리고 고릴라, 사자, 코끼리로 상징되는 동물을 중재하는 인물이다.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귀족인 그는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팽창욕을 저지하는 투사인 동시에 동물의 생태, 심지어 마음까지 이해하는 생태주의자다. 기나긴 괴성으로 동물을 마음대로 부리는 조련사라기보다는,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고 그들과 교감하는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설정은 타잔의 아내 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제인은 악당의 손에 붙잡힌 뒤 비명을 지르며 남편의 구원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난국을 타개할 방안을 찾는 능동적 인물이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정글에서 살았던 타잔이 어떻게 그토록 빠른 시간에 인간의 언어는 물론 영국 귀족의 세련된 매너까지 익혔는지, 상원의원인 그레이스토크는 벨기에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막기 이전에 그보다 더 큰 제국주의 국가인 조국 영국의 대외정책을 근심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몇 가지 의문이 남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근사한 여름용 블록버스터를 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총 여덟 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 중 마지막 네 편을 매끈하게 만들어냈던 데이비드 예이츠가 연출했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