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좀 있음)







그럭저럭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던 장고의 아내 구출작전이 망한 건 닥터 슐츠의 어처구니없는 돌발 행동 때문이었다. 원래 슐츠는 독일인답게 참으로 냉철한 사람이었다. 능숙한 현상금 사냥꾼인 그는 장고가 가진 킬러로서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목표물을 죽이길 서슴지 않았으며, 적의 기습을 정확히 예상해 매복을 할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났다. 어딜 가도 적의 행동을 파악하고 예상해 그에 딱 맞는 행동으로 결과를 얻어내는 사람이었다. 


성노리개 노예로 붙잡혀 있는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를 구하기 위해 캔디랜드에 들어간 슐츠와 장고. 둘은 흑인 노예들의 막싸움인 만딩고 선수를 사기 위해 들른 것처럼 꾸민 뒤, 슬쩍 브룸힐다까지 적당한 가격에 사오려고 한다. 그러나 칼빈 캔디의 눈치빠른 흑인 집사 스티븐은 장고와 브룸힐다의 관계를 눈치챈다. 결국 슐츠와 장고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캔디는 300달러 가치의 브룸힐다를 1만2000 달러에 넘긴다. 한마디로 슐츠와 장고는 바가지를 쓴 셈이다. 


그러나 현상금 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슐츠에게 1만2000 달러면 좀 비싸긴 하겠지만 감당못할 돈은 아니다. 스티븐이 슐츠의 지갑을 가로채 지폐 12장을 꺼낸 뒤에도 남은 지폐가 두둑한 것이 화면에 보인다. 계획이 탄로나고, 바가지를 쓴 것이 억울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고의 총잡이 장고를 위해서 그 정도 돈은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든 거래가 끝나고 저택을 빠져나오기 전, 캔디가 갑자기 슐츠를 부른다. 남부 지역 전통에 따르면 악수를 해야 거래가 성사된다는 것이다. 잔악한 캔디와 악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슐츠는 내가 악수를 하지 않는다고 1만2000 달러를 포기할 것이냐고 묻고, 캔디는 저 녀석이 악수하지 않고 나간다면 브룸힐다를 쏴 죽이라고 부하에게 이른다. 


캔디는 미국 남부의 관습을 지키려 했고, 그것이 그때까지 캔디를 이끌었던  삶의 코드였다. 남들 보기엔 악수를 하든 안하든 돈만 챙기면 되겠지만, 그것은 뼛속까지 남부사람인 캔디의 방식이 아니다. 슐츠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캔디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손을 잡기 직전, 슐츠는 숨겨두었던 작은 권총을 꺼내 캔디의 가슴에 쏜다. 그리고는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장고를 돌아보며 말한다. "미안해. 참을 수 없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슐츠는 캔디의 부하가 쏜 총에 맞는다. 3초 후에 자기도 캔디 부하의 총에 맞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캔디를 죽인 슐츠, 까짓거 악수 한 번 하고 조용히 돌아나오면 장고와 브룸힐다와 슐츠 모두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을텐데. 



프랑스풍을 좋아해 '무슈 캔디'라고 불리길 원하는 악당 캔디. 그러나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못한다. 


여기서 생각나는 건 전갈과 개구리 우화다. 개구리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너던 전갈이 개구리를 찌른다. 이제 곧 둘다 죽을 판이다. 개구리는 묻는다. 너도 죽을텐데 왜 나를 찔렀니. 전갈은 말한다. 그게 내 본성이야. 


슐츠는 냉철한 프로페셔널 킬러였지만, 그에겐 억누를 수 없는 본성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연민같은 것. 문제의 악수 장면 직전, 슐츠는 캔디랜드로 들어오면서 마주친 광경을 회상하고 있었다. 도망치려다 붙잡힌 노예가 개에게 물어뜯겨 죽는 모습이었다. 슐츠는 그 장면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만든 장본인 캔디에 대한 적의를 억누르지 못한다. 그런 못된 녀석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도 발동했을 것이다. 


사람이 그런거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곧 후회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도박하면 돈 날리는 거 누가 모르나, 옛 여자에게 전화 하면 후회할 거 누가 모르나, 지금 한 병 더 시키면 내일 아침 머리가 깨질거 누가 모르나, 지금 '문명' 씨디 넣으면 이번 시험 망하는거 누가 모르나,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래도 사람이란게 전갈이다. 개구리를 찌를 수밖에 없다.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 때만 해도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이런 인간적인 감정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의 영화가 '영화 기계'가 아닌, 인간이 찍은 듯 보인 것은 <재키 브라운>이 처음이었다. 재키 브라운(팸 그리어)에 대한 맥스 셰리(로버트 포스터, 나중에 <디워>에 나와 사람 놀라게 함)의 미묘한 감정이 그랬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하면 <재키 브라운>은 정말 '어른의 영화'였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쿠엔틴 타란티노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겐 이미 <킬빌 1,2>가 있고, <재키 브라운>, <펄프 픽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장고>는 볼만한 영화다. 그의 영화는 피칠갑이 다가 아니라는, 그 피칠갑은 그 사이의 인간적인 감정들 때문에 더욱 처절함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기 때문이다. 



닥터 슐츠와 장고(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