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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즙이 내리는 땅, <전설의 땅 이야기>







전설의 땅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오숙은 옮김/열린책들/480쪽/5만5000원


에덴동산, 아틀란티스, 엘도라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현대 과학·상식의 견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장소다. 하지만 과거의 누군가는 이 장소들의 존재를 믿었고, 심지어는 지금도 믿는 사람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로 인해 ‘믿음의 흐름’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런 장소들은 신의 존재와 비교할 수 있다. 무신론자들이 신의 부재를 아무리 엄밀한 방식으로 검증한다 한들, 신자들은 신의 존재를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신이 있건 없건, 신자들의 믿음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움베로트 에코의 <전설의 땅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전설의 장소들을 소개한다. 박학다식으로는 따를 이가 적은 이 작가·사상가는 동서고금의 전설적 장소들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곳으로 향하는 투어가이드를 자처한다. 가상의 장소들에 덧붙여진 터무니없는 사연들에는 때로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꾸며진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코가 관심을 두는 것도 그 대목이다. 


고대·중세의 지식인들은 현대인이 믿는 것보다 똑똑했다. 현대인들은 그들이 지구를 평평하게 여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구가 구형이라는 건 고대 후기에 이미 상식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 프톨레마이오스 모두 지구가 둥글다는 전제 아래 학문을 펼쳐나갔다. <신곡>에서 단테는 지옥의 끝까지 내려갔다가 연옥의 산 아래로 나오는데, 이는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 아래 가능한 서술이다. 


그런데도 고대·중세의 지도에서 지구를 평평하게 그리곤 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세의 지도는 경험적 재현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재현이었다. 실제의 지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들이 마주칠 위험을 알려주거나 예루살렘 같은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대중의 믿음에 대한 응답이었다. 



솔로몬 성전의 건설 장면을 상상한 중세의 그림. 중세에 유행한 고딕성당 풍으로 그려냈다. 


기독교 문화는 유럽 문화의 기저에 흐른다. 헤브라이즘은 유래가 오래된 만큼 전승 도중 많은 부분이 변형됐다. 사람들은 구멍난 서사의 수수께끼들을 온갖 믿음의 행동으로 채우려 했다.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인들에게 정복당했을 때, 이곳에 살던 이스라엘 10개 지파 성원들은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 타민족과 섞여들며 뚜렷한 계보를 잃어갔다. 그러나 잃어버린 신도들을 재통합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남은 과제와 같았다. 이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어떤 이들은 사라진 이스라엘 지파들이 카슈미르에 있다고 지목했다. 심지어 중앙아시아 타타르 부족, 줄루족, 일본인, 말레이시아인 등과 이스라엘 지파를 연관시키기도 했다. 간혹 색슨족(Saxons)이 이삭의 아들들(Isaac‘s sons)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는 물론 어원을 완전히 무시한 추정이다. 


성배 역시 오랜 시간 유럽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원래 성배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담은 접시 혹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잔을 일컬었는데, 사람들은 성배의 존재와 그 이동 경로를 둘러싸고 온갖 추측을 쏟아냈다. 이럴 때는 먼저 말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가는 법이다. 아서왕과 엑스칼리버의 전설을 정리한 중세인 로베르 드 보롱은 성배가 아서왕 전설 속 이상향인 아발론에 보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성배 추종자들은 아발론의 위치를 찾아내려 갖은 노력을 다했다. 어떤 이들은 아서왕의 묘비가 발견됐다는 소문이 떠돈 영국 글래스톤베리를 아발론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역시 지상낙원은 영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풍요가 핵심이었다. 10세기에 기술된 시 ‘우니보스’에는 코케인의 땅이 처음 등장했다. 이후 중세의 시, 우화 등에 종종 등장한 이곳은 강에는 우유가 흐르고, 샘에서는 포도주가 솟아나고, 산은 치즈로 돼 있고, 나무에는 소시지가 열리는 땅으로 묘사됐다. 폭풍이 칠 때는 당의를 입힌 아몬드 우박, 비가 올 때면 육즙이 내린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올 법한 상상력이지만, 절대적 빈곤에 시달렸던 중세인들에게는 먹을 것 풍부한 코케인의 땅이야말로 진정한 낙원이었을 것이다. 이곳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뿐 아니라 사회 질서조차 전복적이었다. 농부가 주교를 조롱하고, 물고기가 어부를 잡고, 동물이 우리에 갇힌 사람을 구경한다. 



19세기의 풍자적 그림 '뒤집힌 세계'. 어떤 유토피아는 이런 식의 가치 전도를 특징으로 한다. 


전설의 땅 이야기는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되기도 했다. 독일 나치가 대표적이다. 나치는 고도의 관료적 합리성과 밀교적 신비주의가 뒤섞인 집단이었다. 나치 핵심 관료 하인리히 힘러는 1935년 ‘선조의 유산 연구와 교육을 위한 협회’를 발족시켰다. 협회는 고대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재발견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들은 그리스도교보다는 북유럽 신비주의에 영향받았고,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역시 고대 북유럽의 룬 문자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북극 신화다. 보스턴대 석좌교수였던 윌리엄 F 워렌은 북극에 지상낙원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윈의 주장과는 반대로, 북극에 살던 아름답고 수명이 긴 최초의 주민들이 대홍수와 몇 차례의 빙하기를 거치며 현재와 같은 열등한 인류가 됐다고 주장했다. ‘북극 민족’의 우월성과 아시아, 지중해 민족의 열등성을 은연중 드러내는 이 이론은 훗날 아리안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나치들에게 전용됐다. 


이런 전설들은 완전한 허구이거나, 일부 사실에 대량의 상상력이 가미된 결과다. 극심한 허기 속에 육즙이 내리는 땅을 꿈꾼 빈자들의 상상력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안쓰럽다면, 북극 민족의 존재까지 상정하며 자기 종족의 우월성을 강조한 뒤 타 종족을 말살시키려 한 나치의 상상력은 끔찍하다. 에코는 한 인터뷰에서 “갈릴레오보다는 프톨레마이오스에 관심이 있는데, 그 이유는 프톨레마이오스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터무니 없는 전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웃음치며 무시하기보다는 왜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폭넓은 지식인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