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옛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배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동료 출연자들은 놀리듯 웃는다. 제작진은 그 영화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전설의 영화’라고 조롱한다.


혹자는 이런 말에서 ‘예능감’을 느낀다지만, 이런 행동은 차라리 ‘무례’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 웃음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 영화의 관계자들이 봤다면 인상을 펴지 못했을 듯하다.


영화는 대규모 공동작업의 결과다. 수십~수백 명의 주·조연,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고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스태프도 그만큼 많다. 투자자, 기획자, 배급관계자, 극장주, 마케터들도 영화의 성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다.


그런데 딴 사람도 아니라 영화의 간판인 주연 배우가 텔레비전에 나와 해당 영화를 폄하한다. 실제 영화의 작업 과정이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애초에 출연을 원치 않았으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주연을 맡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작비만 수십 억원에 이르는 상업영화의 주연이라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화를 내야 하는 이들은 이 배우의 이름값을 믿고 영화표를 산 관객일 것이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출판 편집자도 거들었다. “영화를 책으로 바꿔도 100% 공감합니다.”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책 역시 공동작업이다. 글을 쓰는 건 저자지만, 책을 만드는 건 편집자다. 그러나 어떤 저자들은 책이 성공하면 공을 갖고, 실패하면 “편집이 엉망이었다”고 잘못을 떠넘긴다.


자신이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옹호하는 대신, 분노하거나 조롱하는 일. 언젠가부터 세간에선 이런 태도를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불렀다. 마치 영혼이 육체를 떠나 제3의 위치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듯, 자신이 관련됐던 일을 남의 일처럼 평가하는 태도다.



위키피디아의 유체이탈 설명 이미지. 이걸 찾은게 아닌데....


유체이탈자들을 문화계에서만 찾을 건 아니다. 이 분야의 대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의 난맥상이 노출될 때마다 ‘격노’했다. 대통령이 야당 당수나 정치평론가라도 된듯이 국정을 비판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하다. 지난 정권의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댓글 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오불관언의 자세를 유지한다.


유체이탈 화법은 일부 진보진영 사람들에게도 애용된다.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문제 등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싹이 트거나 악화됐고 현재까지 서민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모든 경제 문제에 대해 “이게 다 이명박(혹은 박근혜) 탓이다”라는 말로 선을 긋는다.


현대사회는 워낙 복잡해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는 일이 거의 없다. 선거든, 사업이든, 예술이든 결과를 낳기 위해선 수많은 조력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일이 잘되면 공을 나누겠지만, 잘못되면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럴 때 유체이탈 화법은 큰 유혹이 된다.


하지만 유체이탈 화법은 비겁하다. 자신이 관여했던 일에서 이름을 지운 뒤, 상대를 비판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또 유체이탈 화법은 무례하기도 하다. 자신을 믿고 함께 일한 사람들을 순식간에 바보로 만든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거니와, 잘못이 훗날의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경쟁상대에게 작은 흠결이라도 보이면 그대로 몰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한다. 이럴 때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사회적 인간의 본능 같기도 하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멋있다.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는 사람과 순결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