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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유아인, 장근석, 송중기, 충무로 남우의 세대 교체.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최근 젊은 남자 배우 3명을 잇달아 인터뷰했다. 이런 일은 여기자가 했으면 더욱 좋아했을 것 같긴 하지만. 시간순대로 유아인, 장근석, 송중기였는데, 앞의 두 명은 영어로 치면 offbeat했고(한국어로 적합한 표현이 있긴 하지만, 여기 쓰긴 힘들다), 송중기는 normal했다. 이들이 한국영화 남우의 인력풀을 넓히면 좋겠다.

펫처럼 웃고 있는 장근석/권호욱 선임기자

한국영화에 새로운 얼굴과 감성의 남자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다.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이들은 자신의 본격적인 첫 주연작을 내놓거나,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한국영화 남우의 풀을 넓히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남우는 송강호, 김윤석, 설경구 등 40대 연기파였다. 이들은 연극 무대에서 연마된 연기력으로 한국영화계를 주름잡았다. 하정우는 30대지만, 스타성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배우였다. 원빈, 소지섭, 조인성, 강동원 등 빼어난 외모를 가진 30대 스타가 그 뒤를 이었으나 군입대에 따른 공백, 신중한 작품 선택 등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잡지는 못했다.

최근 개봉되고 제작중인 한국영화를 보면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 등장한다. 유아인(25)의 실질적인 첫 상업영화 주연작 <완득이>는 4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400만 관객을 넘보고 있다. 장근석(24), 송중기(26)는 나란히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너는 펫>과 <티끌모아 로맨스>에서 톱스타 김하늘, 한예슬과 ‘투 톱’으로 출연했다. 드라마 <드림 하이>로 떠오른 김수현(23)의 차기작은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과 출연하는 영화 <도둑들>이다. 올해 <파수꾼>과 <고지전>으로 각종 영화제의 신인남우상을 휩쓴 이제훈(27)은 <건축학개론>, <점쟁이들>에 캐스팅됐다.

이런 설정 환영한다/김기남 기자

이들은 일단 준비된 ‘스타’이자 ‘배우’라는 점에서 영화팬과 관계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구정아 프로듀서는 “송중기와 함께 무대 인사를 돌다보면 강동원이 출연한 <늑대의 유혹>을 마지막으로 보기 힘들었던 배우 팬덤이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20대 초·중반 관객을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송중기를 보려는 10대 관객 비중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 구 프로듀서의 전언이다.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은 “연기라는 것은 삶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30대는 돼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유아인, 송중기 등 새로운 세대의 배우들은 젊고 매력적인데다가 연기까지 잘한다”며 “잘생긴 신세대 배우들은 항상 명멸했지만, 이 정도의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한꺼번에 나온 적은 드물다”고 말했다.

이들 젊은 배우는 자기 홍보에 적극적이고, 주관이 뚜렷하다. ‘거만해졌다’는 평을 의식해 언제나 ‘겸손’을 염두에 두어야했던 옛 배우들과는 다른 점이다. 김윤석은 유아인과 함께 출연한 <완득이>의 제작보고회에서 “요즘 젊은 배우들은 말을 안 듣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는 젊은 배우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잣대와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완득이>를 홍보한 퍼스트룩 이윤정 대표는 “유아인은 자신의 세계관, 연기관, 배우관이 명확하고 개성있다”며 “우리나라 배우들도 대중에게 끌려가거나 그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고 말했다. 장근석은 스스로를 ‘아시아 프린스’라고 부른다거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 당시 김명민, 이지아에게 대중의 시선이 쏠리자 스스로를 부각시킬 방안을 궁리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 송중기는 데뷔작 <쌍화점> 촬영 당시 대사가 없었으나, 유하 감독에게 거듭 부탁해 대사를 얻어낸 일화를 스스로 소개한 적 있다.

이들은 강한 남성성을 과시했던 앞세대 남우들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다. <너는 펫>에서 장근석은 연상의 직장여성에게 ‘애완동물’처럼 애교를 부린다. <완득이>의 유아인은 킥복싱을 하지만, 소지섭, 권상우처럼 단련된 근육을 선보이진 않는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송중기는 가진 것 없는 백수면서도 마냥 천진난만하다.

강유정 평론가는 “한국영화계에서 잔혹한 스릴러가 유행했던 시절엔 강인한 남성성을 보여주는 배우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 대중은 다시 부드러운 남자를 원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젊은 남우들이 다음 세대의 한국영화를 이끄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강유정 평론가는 “송중기, 장근석은 모두 연상의 스타 여배우들과 연기하면서 주연으로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한 대형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20대 배우층이 두꺼워지면 캐스팅의 선택지가 많아져 영화 산업이 건강해진다”며 “다만 아직 이들이 배우로서 완전히 자리잡은 것은 아니니만큼 앞으로 한 두 작품 정도를 더 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진정성과 아우라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중기가 낸 스킨 케어 책은 군인들이 특히 많이 사갔다고/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