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개봉 이틀째에 봤다. <아이언맨> 1편은 꽤 좋아했고, <토르>나 <퍼스트 어벤져>(즉 캡틴 아메리카)도 그럭저럭 봐줬지만, <어벤져스>는 별로였다.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헐크가 함께 나왔는데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고 느꼈다. 개성 강한 영웅끼리 티격태격하다가 끝. 모두들 이야기하는, 헐크가 로키를 떡실신시키는 장면에서 피식 웃었을 뿐이었다. 


일단 이 속편을 두고 "캐릭터에 깊이가 생겼다"는 식의 평가에 동의를 못하겠다. 물론 전편보다 각 캐릭터의 '고민'을 좀 더 다루긴 했다. 예를 들어 활을 빠르고 정확하게 쏜다는 것 빼고는 특출한 능력이 없는 호크아이의 고민 같은 것. 호크아이는 곧 태어날 아이를 포함하면 세 아이의 아버지다. 가족은 한적한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신(토르), 천재 엔지니어이자 대부호(아이언맨), 애국심 넘치는 군인(캡틴 아메리카), 천재 과학자이자 괴물(헐크)과 한 팀을 이룰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평범한 사람이다. 적들은 매번 어벤져스의 가장 약한 고리인 호크아이를 노리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처지를 걱정한다. 그런데 그걸로 끝. 분량으로 치면 호크아이의 고뇌란 141분의 상영 시간 중 10분도 잡아먹지 않는다. 그것도 매우 피상적이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헐크와 블랙 위도우의 고민도 마찬가지.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는 뭘 고민하는지 잘 모르겠다. 캐릭터가 많아서 그랬다는 건 변명일 뿐이다. <어벤져스> 못지 않게 많은 캐릭터가 나오는 <엑스맨> 시리즈를 떠올려보라. 엑스맨 시리즈의 기원을 다시 쓴 <퍼스트 클래스>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흥미진진하고 장중하고 쿨했다. 캐릭터의 깊이는 각 캐릭터에 대사 몇 마디 더 던져준다고 생기는게 아니다. 영화 전체의 주제가 깊이 있고, 캐릭터들이 그에 조응할 때 생긴다. <엑스맨>의 어떤 캐릭터들은 많은 대사를 부여받지 못했지만, 저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울트론의 수하들과 고통받는 히어로들.






셰익스피어 희곡(어느 희곡인지?)에서 대사의 모티브를 따왔다는 악당 울트론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위해선 평화를 깨트리곤 하는 어벤져스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악당 울트론의 목표다. 아마 울트론은 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보다는, 적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지향하는 것 같다. 만일 그런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킹스맨>의 악당 새뮤얼 잭슨(이 영화에선 착한놈이다!)처럼 좀 더 친절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울트론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개발하려 한 영구적인 평화 프로그램의 오류에 의해 태어난 존재인데, 사유의 깊이나 언변이 충분하지 않다. 난 영화 내내 울트론이 왜 그렇게 미쳐 날뛰는지 이해하지 못해, 어벤져스와 울트론의 거대한 싸움이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했다. 


어수선한 영화에서 봐줄만한 것은 슈퍼히어로들의 각기 다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였다. 각기 다른 권법을 익힌 여러 문파의 고수들이 힘을 합쳐 싸우는 느낌이다. 직선으로 빠르고 힘차게 날아가는 아이언맨,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 빠르고 강한 짐승처럼 움직이는 헐크, 방패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때론 한 방향으로, 때론 교차하며 적과 대결한다. 이 영화의 무술감독(그런 사람이 있다면?)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충분히 유머러스하지도, 장중하지도 않다. 141분의 상영시간이 쉽게 지나가긴 하지만, 너무 쉽게 지나가 뭘 봤는지 잘 모르겠다. 빨리 매드맥스, 제임스 본드, 이단 헌트를 보여줘. 



존재감 없는 악당, 울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