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드럭스>는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 활황기 혹은 거품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의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신입 영업사원 연수회는 거대한 쇼같다. 이들이 의사에게 접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도 흥미롭다. 아마 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결말이 좀 마음에 안들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다. 제이크 질렌홀도 매력 있고.

<러브 앤 드럭스>. 얘네들, 줄곧 이러고 논다.



앤 해서웨이는 차세대 미국의 연인입니다. 1990년대 미국의 연인이었던 줄리아 로버츠에게는 입 크기에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의 주연작 <러브 앤 드럭스>가 13일 개봉합니다. 상대역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제이크 질렌홀입니다. 90년대 말 미국이 배경이며 질렌홀은 대형 제약회사 영업사원, 해서웨이는 파킨슨병 초기 환자로 등장합니다. 가벼운 섹스로 시작한 둘의 관계는 깊은 감정을 나누는 관계로까지 발전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이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겁먹은 해서웨이는 차츰 가까워지는 질렌홀을 멀리하려 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해서웨이. 오늘날과 비교하면 영 이상하다.

해서웨이의 출세작 <프린세스 다이어리>(2001)를 기억하는 팬은 <러브 앤 드럭스> 속 그녀의 모습에 아연실색할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미국 고교생이 작은 왕국의 공주가 된다는 내용의 10대 취향 판타지 주인공이 하룻밤 사랑을 위해 옷을 벗어던졌으니 말입니다.

한국 영화팬이 해서웨이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기 시작한 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즈음해서였을 겁니다. 목불인견의 허세와 엄살로 점철됐던 원작 소설이 볼 만한 영화로 거듭난 공은 우선 ‘악마 편집장’ 메릴 스트립에게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스트립의 혹독한 테스트를 견뎌낸 해서웨이의 꿋꿋함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욕과 시련을 참아내기, 의지와 낙관으로 현실을 돌파하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갓 사회에 들어선 직장여성을 위한 성장영화인 동시에, 10대 스타로 출발해 진지한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한 해서웨이의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사진 위). 이 영화 속의 '변신 전' 해서웨이의 모습(아래). 난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해봤을때, 영화가 소설보다 나은 경우를 딱 두 번 봤다. 하나는 이 영화, 다른 하나는 <파이트 클럽>이다.   

크고 뚜렷한 낙천성이야말로 해서웨이의 무기였습니다. <레이첼, 결혼하다>에서는 약물중독으로 재활하던 중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한 문제아로 나왔는데, 이 진지한 가족극에서조차 해서웨이는 결국 모두 함께 춤추는 결말을 이끌어냈습니다. 할리우드가 종종 보여주는 이 같은 궁극의 낙천성을 ‘가짜’라고 여기는 관객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해서웨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에겐 타고난 선의와 의지가 있어, 어떤 상황에서든 해피엔딩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차츰 근육이 마비돼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지만, 원인을 알 수 없고 이렇다할 치료법도 없는 파킨슨병은 ‘가장 잔인한 병’이라고 일컬어집니다. <러브 앤 드럭스>에서 해서웨이의 상대역 질렌홀은 거품이 가득 낀 90년대 후반 미국의 호황을 만끽합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발명과 함께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질렌홀의 출세길은 훤히 뚫립니다. 그러나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닫혀가는 해서웨이에게로 자꾸만 다가갑니다. 온갖 역경을 겪는 현실 속 여성, 그러면서도 함께하는 사람에게 넘치는 낙천성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 여성.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억대 연봉을 받는 것보다 힘듭니다.

해서웨이는 <스파이더맨>의 제임스 프랭코와 함께 2월 말 열리는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공동사회자로 낙점받았습니다. 이는 23년 만의 공동진행이자,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젊은 진행자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의 한 진수를 보여주는 이 쇼에서 해서웨이의 눈과 입처럼 커다란 기쁨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러브 앤 드럭스>의 해서웨이. 미국식 중국음식 맛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