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빨간색 불을 쏘는 해리 포터와 파란색 불을 쏘는 볼드모트. 


한 해에도 수백 편의 영화가 개봉되고 어떤 영화는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로 제작되지만, 한 세대의 ‘문화적 기억’에 새겨지는 영화는 드물다. 2001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이래 10년간 이어진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바로 그 드문 예에 해당한다.

마지막 ‘해리 포터 영화’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2>가 13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했다. 금요일 개봉이 관행인 미국에서는 15일 개봉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2편이 시작한다. 덤블도어, 도비 등 정든 인물들은 묘지에 묻혔고,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절대악 볼드모트의 수하인 스네이프에게 장악됐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의 삼총사는 볼드모트를 이기기 위한 마지막 가능성을 찾지만 승산은 높지 않다.


‘해리 포터 영화’를 여태 ‘애들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법사의 돌>(1편)과 <비밀의 방>(2편) 이후 이 시리즈를 본 적이 없음이 틀림없다. <나홀로 집에>,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가족영화로 유명한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한 1, 2편의 눈높이는 확실히 청소년 이하 관객층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아즈카반의 죄수>(3편) 이후 영화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볼드모트의 부활이 다가왔고, 호그와트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웃음기를 잃기 시작했다.


악이 강성하자 선은 지리멸렬해졌다. 해리와 그 친구들조차 흔들렸다. <죽음의 성물1>(7편)에 이르면 볼드모트에 대항하는 선은 해리, 헤르미온느, 론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법)세계의 운명이 세 청소년의 어깨에 얹힌 잔인한 상황이다.


멀쩡한 헤르미온느(위)와 벨라트릭스로 변신했다가 돌아온 헤르미온느, 혹은 허마이오니


<죽음의 성물2>에서는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물들이 죽는다. 장쾌한 경기가 펼쳐지던 퀴디치 경기장, 꿈과 장난기와 로맨스가 익어가던 호그와트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불타고 무너진다. 유년기의 추억도 잿더미가 된다.

이 시리즈는 <죽음의 성물1>까지 한국에서만 2천4000만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이다. 그러나 ‘해리 포터 영화’의 강점은 관객수가 아니라 감정적 호소력에 있었다. 오래됐지만 여전히 되새길만한 권선징악의 테마가 ‘해리 포터 영화’ 전체를 강물처럼 유유하게 관통한다. 지금 선은 비록 약하지만 언젠가 이길 것이니, 그날이 올 것을 믿어라. 해리 포터는 지난 10년 내내 그 믿음의 증인으로 스크린에 남아있었다.


덤블도어 교장 역의 리처드 해리스가 2편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서 마이클 갬본으로 교체된 것을 제외하고는, 주요 배역은 같은 배우가 줄곧 연기했다. 관객들은 매년 몸과 마음이 조금씩 자라는 배우들을 목격했다. 어떤 이는 소년 시절의 순진무구, 천진난만한 모습을 잃어버린 해리 포터 역의 다니엘 레드클리프가 징그럽다고 말하지만, 유년기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볼드모트와 그의 수하들.


볼드모트에게 일격을 당한 해리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미 죽은 덤블도어 교장을 만난다. 해리는 교장에게 묻는다. “이건 현실인가요, 제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가요.” 교장은 답한다. “물론 네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아닌 건 아니란다.” 해리와 덤블도어의 문답은 판타지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판타지는 머리 속의 공상이지만, 현실이 아닌 건 아니다.

미약한 선이 도저한 악을 이기길 바라는 한 세대의 염원이 ‘해리 포터 시리즈’에 집약됐다. 그 선인은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할 줄 알고,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고, 절대권력을 거부한다. 이 선인은 가진 것 하나 없는 고아 소년이었다. 


내년 여름, 그 다음해 여름에도 이 궁극의 선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관객은 오직 호그와트로 향하는 9와 3/4 플랫폼을 상상하면서 또다른 선인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 선하고 굳센 소년의 이름, ‘해리 포터’를 마음 속으로 되새길 뿐이다. 


고생 많았다. 해리, 헤르미온느, 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