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내가 그리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점만 기억이 난다. 교토 여행중 실제로 금각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도금된 외관이 밝게 반짝이는 쾌청한 날이었다. 명색이 절인데 그토록 호화롭게 금빛으로 번쩍이는 모습이 아름답거나 멋있다기보다는 어딘지 과잉으로 여겨졌다. 전혀 반짝이지 않지만 기품있으며 충격적으로 모던하기까지한 은각사와 비교하니 금각사의 아름다움이 더욱 이상했다. 아마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도 실제의 금각사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미시마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1949년에 출간한 <가면의 고백>은 그의 첫 장편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리고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변형해 내놓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면의 고백>을 '픽션'으로 상정하고 읽는 것은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미시마의 삶에 대한 이런저런 연구가 밝히다시피, 이 책은 당시 24세이던 미시마가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에 대해 내놓는 솔직한 '고백'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문학동네판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는 "작품 자체가 미시마의 자서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에 입각"했다고 밝힌다. 


또 해설은 "자신의 성관념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은 일본문학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전한다. 하지만 일본문학의 전통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성적 취향을 독자에게 알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자신을 스스로 연민하는 내용이 이 '고백'의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고백'을 보면, 미시마는 어린 시절부터 동성애 성향을 간직해왔다. 어린 미시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을 우연히 본 뒤 가슴이 두근댔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의 군인이었으나 기독교인임이 밝힌 뒤 기둥에 묶인 채 화살을 맞은 성인이다. 서양의 화가들은 날씬한 근육질의 젊은이가 몇 대의 화살이 꽂힌 채 고통인지 황홀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피를 흘리는 모습을 그리곤 했는데, 미시마가 이런 그림 중 하나를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그저 잘 다듬어진 남성의 몸이 아니라, 피 흘리고 찣기고 고난당하는 남성의 몸.  



미시마 유키오가 재현한 성 세바스티아누스


이런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가 세계를 상대로 총력전을 치르던 당시의 일본에서 원만하게 살아갈 리가 없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삼대째 도쿄대 법대에 진학하고, 운좋게 징집을 면했고, 조신한 처자와 혼담도 오가지만, 그는 '이대로 폭격을 당해 가족이고 뭐고 모두 죽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허나 이런 자학적, 파괴적인 마음을 '세상과의 불화에 따른 절망'으로 정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는 왜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외치지 않고, 세상을 저주하지도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고, 그런 세상을 조용히 기대하지도 않는다. <가면의 고백>은 분명 처절한 고백이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데, 이유는 독자들이 '고백'을 들으며 놀랄 때 저자는 '가면' 뒤에서 어딘지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자기 자신마저도 비웃고 있다. 




도쿄대 전공투 학생과의 토론(1969), 미시마 유키오의 자위대 난입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1970)


24살 청년의 이러한 위악적인 제스처는 어딘지 허세처럼 보인다. 200쪽 남짓해 길지 않은 이 소설을 읽은 감상을 "허세 쩐다"는 네 글자로 적는다면 정확하고 함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혼담이 오간 처자를 사랑했지만 어떠한 육체적 끌림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알린다. 그러나 전기적 사실은 그가 33세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중매로 결혼을 했으며, 자녀를 두었고, 부인과 수차례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았음을 보여준다. '가면'이라는 표현으로 피해가긴 했지만, 소설이 드러내는 성적 취향과 어긋나는 이러한 전기적 사실은 다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미시마는 이 책을 "정신적 위기에서 생겨난 배설물"로 설명했다고 하고, 어느 평론가는 이 책에서 "풍요로운 불모"를 느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가면의 고백> 같은 책은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서 나오기 어려우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젓가락을 데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막상 먹어보면 어딘지 입맛에 맞지 않는 일본요리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