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하는 싸이 애기에 한 마디 보태는 것 같아 민망하긴 하지만, 요즘 싸이의 인기를 보니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다. 그곳에서는 가을에 시화전도 열고 문집도 냈다. 난 그와 절친한 편은 아니었기에 오다가다 그의 시를 읽는 정도였는데, 솔직히 가관이었다. 내가 시를 읽어내는데 별 재능은 없다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의 시가 매우 나쁘다는 것 정도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단어들이 이리저리 연결된 정도였는데, 때로는 숫제 단어가 아니라 컴퓨터 자판의 특수기호까지 그 '시' 안에 들어 있었다. 음, 이 한글 음절과 특수문자의 조합을 어떤 사람들은 시라고 부르는 것인가. 그럼 이거 한번 네가 읽어봐. 아주 명문이거든. "나는 오늘 저녁*^&*&*&*나느다ㅓㅏㅓㅇ\\98ㅕ29기ㅏ38857917%$^%*&%&*532 ㅁㄴ아드 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난 군대에 갔다. 아마 그 친구도 갔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 보니 그 친구도 있었다. 그때도 여전히 오가다 눈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친구의 시를 다시 봤다.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문집이었나, 아니면 교내 학보에 발표된 시였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느낌은 남아있다. 시가 좋았다!  거센 물결에 조금씩 모난 부분이 깎여 멋진 모양이 된 바위처럼, 영문을 모를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그의 시어는 그럴싸한 틀 안에 안착해 있었다. 그렇다고 시가 갑자기 얌전해졌다거나 지루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몇 년 전의 패기와 실험도 그 한 구석에 반짝이면서, 시 읽기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따.  


싸이의 연대기 기사를 보며 확인하니 10년도 더 된 때의 일이었다. 그때 같은 집에 살던 여동생이 자기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호들갑스럽게 나를 불렀다. "오빠! 이리와봐! 방송사고야!"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보니 평일 저녁의 가요 프로그램에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이 가수랍시고 나와 욕이 섞인 것 같은 노래를 막 불러제끼고 있었다. 이 십원짜리야 어쩌구 하면서. 그게 싸이였고, '새'라는 노래였다. 그렇게 한 차례 쇼킹한 무대를 꾸미고 조용히 사라질 것 같던 사람이 어젯밤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10만명을 세워두고 무료공연을 했고, 각 언론이 그 공연을 크게 다뤘다. 


대학 시절의 친구는 지금도 시를 쓸까. 난 그가 쓰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안 쓸 것 같다. 그래도 네가 대학 시절 후반부에 썼던 시는 좋았어. 어떤 내용인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미친 짓도 10년 정도 하면 근사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너나 나나 이제 미친 짓 하기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다수의 그것과 조금 다를 때에도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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