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요즘 독서의 방법을 묻는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답하겠다. 한 가지 주제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들을 훑은 적도 있었는데, 비슷한 책들을 오래 읽으니 어느 순간 독서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를 이어서 읽는것 까지는 괜찮은데, 그러다가 같은 시기를 다룬 책을 하나 더 읽으면 좀 질려버리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이 주제별, 시대별 독서를 조금 유연하게 적용한 것이라 할만하다. 


지난해 인터뷰했던 평론가 김봉석씨가 추천했던 레이 브래드버리의<화성연대기>를 읽었다.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화씨 451>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은 비판적인 사유를 갖게 하기에 전면 금지되고, 책을 발견해 태우는 걸 직업으로 삼은 남자가 책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영향은 이후 몇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발견된다. <이퀼리브리엄>에서도 책은 가질 수 없었던 것 같고,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외워 그 책이 된다는 설정은 '크리스찬 블록버스터'라 할만한 <일라이>에 나왔다. 


<화성연대기>는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고, 화성의 선주민들이 멸종하고, 결국 인류도 멸종해가는 내용들을 다룬 단편들을 묶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잡지에 연재된 화성 관련 단편들을 배경의 시대순으로 묶었다고 한다. 화성인이 등장하는 초반의 단편보다는 지구인이 멸망해가는 후반의 단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초반 단편은 화성인의 행동을 통해 1940년대 지구(즉 미국)의 풍속을 풍자하고 비판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 시기 미국 사람들의 정서야 내가 알바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판타지성이 강한 편이라 내 성향하고는 다소 맞지 않았다. 


지구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싸워서 지구인들도 망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 이야기야 20세기 중반 미국 대중문화에서 매우 자주 다뤄온 것이지만, 브래드버리의 단편들에는 멸망 직전 혹은 직후의 황량한 분위기를 함축적이고 시적으로, 품위있게 전달하는 솜씨가 베어있다. 인간이 아무도 없이 문명의 잔해들만 줄곧 움직이는 스산한 풍경을 그린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는 다른 SF단편선집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일 때문에 <적군파>를 읽었다. 미국의 진보운동에 동조했던 한 학자가 머나먼 일본의 진보운동이 스스로 망해가는 모습을 약간의 안타까움이 섞인, 그러나 정밀한 시선으로 그려낸 책이었다. 일본 적군파의 행적이 워낙 극적이어서 잘 읽히고 지적 자극도 있었다. 근래 프런트 페이지를 위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았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2-약속된 장소에서>를 읽었다. 어디선가 70년대의 좌절한 일본 급진 운동가들이 대거 종교에 귀의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적군파>와 옴진리교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2>는 의외의 지점에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1995년 도쿄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의 피해자 증언을 수록한 전편은 이미 읽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한 터였다. '상정 외' 사건이 일어나자 시스템이든 매뉴얼이든 아무 소용 없이 허둥대는 문명 사회의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비슷한 증언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지루해졌다. 그런 느낌을 가진 채로 <언더그라운드2>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상당히 재밌다. 어쩌면 <1Q84>를 좀 더 하드하게 풀어놓은 식이랄까. 무라카미는 사린 가스 테러 관련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1Q84>를 떠올렸다고 한다. 


존사의 공중부양!


긴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로 '공중부양'을 하는 교주 이시하라 쇼코, 극악무도한 범죄를 태연하게 저지르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이미지만 남은 옴진리교가 사실은 벌레 하나 쉽게 죽이지 못하는 신도들로 구성됐다는 사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사회에 염증을 느껴 방황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린 옴진리교의 은밀한 매력, 사린 사건 이후에도 자신이 몸담은 종교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는 신도들의 어리석은 순수함, 선의로 출발했으나 어느 지점에서 독선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광기로 치달아간 종교 지도자의 길 등 여러 요소들이 재미있었다. 책 후반부에 실린 무라카미와 심리치료사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도 유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 아니라도 읽어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