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넷플릭스에서 '서던 리치: 소멸의 땅'(원제 Annihilation)을 보다. 감독이 '엑스 마키나'의 알렉스 갈랜드라기에 영화가 이상할 줄은 알았는데, 역시 이상하다. 일단 이런 영화 만든 감독이 이상하고, 이 영화 주연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이 이상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에 돈을 댄 투자자가 제일 이상하다. 찾아보니 제작비 추정치가 4000만 달러 정도 되던데, 설마 회수하겠다는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우리는 이상한 영화를 좋아한다. 너무 멀쩡한, 그래서 심심한 영화들이 대다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땅을 칠지도 모르지만, 내 돈이 아니니 알 바 아니다. 또다시 헛된 꿈을 꾸는 이상한 투자자들이 나타나길 바랄 뿐. 

미국의 한 국립공원 내 등대에 이상한 빛이 떨어진다. 이후 일대는 기묘한 빛으로 어른거리는 파장에 휩싸인다. 정부와 연구자들은 이 파장을 '쉬머'(the shimmer)라고 부른다. 쉬머가 점점 넓어지자 미국인들(아마 세계인들?)은 걱정에 빠진다. 그리고 쉬머 안으로 들어간 정찰대는 돌아오지 않는다. 군복무 경험자인 생물학자 리나의 남편 역시 쉬머로 정찰나간 이였다. 1년이 흘러 남편이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온 뒤 곧 쓰러진다. 리나는 심리학자, 지리학자 등 또다른 4명의 정찰대(모두 여성)와 함께 쉬머 안으로 들어간다. 쉬머 안에서는 DNA가 '굴절'돼 동, 식물이 기형적으로 변한 상태였다. 리나 일행의 기억이나 지리 감각도 흐릿해지고, 정찰대는 하나 둘씩 죽거나 사라진다. 찾아보니 동명의 3부작 소설이 한국에서 출간돼있다.  

'지옥의 묵시록'처럼 시작해, '컨택트'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풍으로 해석하면서 끝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혹은 '서던 리치'의 속편이 '언더 더 스킨'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돌아보면 외계인이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지구를 공격해 식민지로 삼으려 한다는 생각은, 외계인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한 회고라 할만하다. '인디펜던스 데이' 속 외계인의 행동은 지난 세기(혹은 현재도 마찬가지) 제국주의 열강을 닮았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디펜던스 데이' 속 외계인의 행동은 정확히 예측 가능하고, 그 동기도 분명하다. 하지만 '컨택트'나 '서던 리치'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인식으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그마나 '컨택트' 속 외계인의 동기는 선의에 가깝게 해석되지만, '서든 리치'는 그마저도 모호하다. 인류의 입장에선 위협으로 느끼겠지만, 외계인은 인류를 위협하거나 보호할 의사가 없다. 비둘기가 돌을 위협하는가? 바람이 거미를 보호하는가? 의미 없는 질문이다. 비둘기와 돌, 바람과 거미는 다른 차원의 존재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에 대해 무심하고, 각자의 논리대로 존재할 뿐이다. 

감독의 취미인지, 대중적 고려인지 모르겠지만, 쉬머 안에 스릴러 혹은 호러 영화의 장치들이 조금 놓여있다. 그것 때문에 완전히 안심한 채 명상하고 사색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늑대(와 비슷한 생물)와 곰(과 비슷한 생물)이 정찰대를 공격한다. 특히 곰을 무섭게 그리는데 신경을 쓴 듯 보인다.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를 찢어발긴 바로 그 곰이 진화해서 '서던 리치'에 나오는 것 같다. 그저 흉포해서 무서운게 아니라, 이 곰이 인간의 목소리를 흡수해 들려준다. 방금 "살려줘!"라고 외치면서 죽은 사람의 "살려줘" 소리가 곰의 목에서 반복해서 들려온다면? 그것도 테이프가 조금 늘어진 듯 기괴하게 변형된 소리로 흘러나온다면? 

'서던 리치' 같은 영화를 보고나면 인식의 틀이 확장됨을 느낀다. 아니, 금세 수정하겠다. 인간의 인식틀이라는 것이 갑자기 확장될리도 없고, 확장되어봐야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재확인하는 것 아닐까 . 그렇다면 '서던 리치'를 보고 내가 재확인한 사실은? 인간은 우주의 먼지라는 것. 인간을 이루는 구성물은 언젠가 우주의 일부가 되고, 그때 '나'라는 경계는 무의미하다는 것. 그 사실에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할 일은 없다는 것. 우주의 견지에서 보면 모든 것이 똑같다는 것. 이 영화 보고 이런 생각하는 나도 이상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