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스티븐 시걸을 별로 좋아한 적이 없는데, 이 글을 쓰다보니 왠지 정이 들었다.

행복한 남자, 스티븐 시걸.


60 노인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스티븐 시걸은 불량식품입니다. 싸고 맛있지만 건강에 나쁩니다. 그러나 불량식품은 그 맛입니다.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에 대해 덜 알려진 사실이 있습니다. 시걸은 일본에서 합기도를 배워 일어를 유창하게 하고,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서 여러 장의 음반을 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에너지 드링크를 내는 사업가이며, 독실한 불교도입니다. 그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연출과 주연을 겸한 <죽음의 땅>에서는 ‘환경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싸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팬들이 시걸을 바라보는 이미지는 한때 유행했던 ‘스티븐 시걸 시리즈’에 농축돼 있습니다. 스티븐 시걸이 나온다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 보여주는 유머입니다. 예를 들어 <링>은 “스티븐 시걸이 사다코의 목을 꺾는다”, <아마겟돈>은 “지구로 날아드는 초거대 운석, 스티븐 시걸이 운석의 목을 꺾는다” 등입니다. 그렇게 숱한 영화 속에서 시걸을 만난 악당들은 목이 꺾여 죽어 나갔습니다. 시걸은 영화 속에서 주로 검은 옷을 입었고, 포니 테일(머리를 뒤로 한 갈래로 묶어 늘어뜨리는 스타일)을 하고 나왔으며, 무표정한 얼굴에 허스키한 목소리로 악당을 처리했습니다. 이같은 시걸 영화의 일관된 흐름에 대해 팬들은 ‘시걸리즘’이란 말까지 붙였습니다. 그러나 팬들의 마음이란 깎아놓은 사과처럼 쉽게 변하기에, 시걸의 2000년대 영화들은 극장 대신 비디오나 DVD로 직행하기 일쑤였습니다.

시걸과 마셰티의 최종대결.

21일 개봉하는 <마셰티>의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이같이 독특한 시걸의 이미지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여느 영화에서 시걸은 선인이었지만, 이번엔 멕시코 갱단 두목입니다. 수영복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화상전화로 미국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그는 부하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직접 텍사스로 건너옵니다. 예의 검은 복장, 날카롭게 벼린 일본도, 그러나 꽤 비대해진 몸을 이끌고서 말입니다.


언제나처럼 이 영화에서도 시걸은 ‘연기’란 걸 하지 않습니다. 대사엔 고저장단이 없고, 표정은 돌하르방처럼 한결같으며, 몸동작은 조선시대 선비처럼 느릿합니다. 로드리게즈 감독은 시걸이란 배우를 그냥 그 자리에 세워둠으로써, 과거의 B급 액션영화를 패러디하는 동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영화에 진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시걸에게 가족을 잃은 남자 마셰티는 복수를 계획하지만, 비장하기보다는 어딘지 어설픕니다. 또 등장하는 미녀들마다 흉악하게 생긴 마셰티에게 왠일인지 반해 옷을 벗어젖힙니다.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튀어나오는데, 잔인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습니다. 

"Machette don't text" 란 대사에서 모두들 웃었다.

지금 스티븐 시걸은 그런 배우입니다. 시걸이 인상을 쓸수록 관객은 웃습니다. 1990년대의 시걸은 진지했고, 2000년대의 시걸은 촌스러웠지만, 2010년대의 시걸은 어린 시절 하교길에 먹었던 불량식품같은 향수의 대상입니다. 물론 시걸이 거대 블록버스터나 고고한 아트 필름의 주연으로 활약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작심하고 황당한 영화에 출연해 웃음과 향수를 선사하는 것만으로도 시걸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됩니다. 제 생각엔 시걸도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오래 살아남고 볼일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때론 죽이는 간호사 언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