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영(왼쪽)과 양익준 감독. 김기남 기자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민낯의 중년 아줌마에게도 사랑은 있다. 여고생이라고 30대 남자를 좋아하지 말란 법 없다. 그러나 세상 온갖 사랑을 그린 영화들도 이런 사랑은 다루지 않았다. 2편의 중편을 묶은 <애정만세>는 조금 색달라 남다른 시선을 받는 사랑들을 그린다.

전주국제영화제, KT&G 상상마당, 인디스토리는 2007년부터 단편영화 제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숏숏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사랑’으로 잡고 부지영, 양익준 두 감독을 섭외했다. 그러나 사랑이란 주제의 범위는 너무 넓다. 부모와 자식, 연인, 신과 신도의 관계도 사랑으로 묶을 수 있다. 짜맞춘 것도 아닌데 두 감독이 써온 시나리오는 ‘나이 차에 힘든 사랑’이란 주제로 모였다.


부지영의 <산정호수의 맛>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순임(서주희)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지난 가을 산정호수에서 열린 회사 야유회 때 2인3각을 하며 자신을 감싸안은 연하남 준영의 손길을 잊지 못한다. 순임은 준영을 짝사랑한다. 양익준의 <미성년>은 당돌한 여고생 민정(류혜영)과 30대 남자 진철(허준석)의 사랑을 그린다. 우연히 민정과 하룻밤을 보낸 진철은 내외의 금기를 의식해 민정을 피하려들지만, 오히려 민정은 둘의 연애를 주도한다.

산정호수의 맛

“남편이 가편집본 보고 ‘이 여자 돌아이지?’라고 묻더군요.(웃음) 순임은 지극히 정상이고 그녀의 행동은 아름답습니다. 자기의 환상을 충족시키는게 어때서요. (사랑을) 상상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부지영)


“미성년은 막 섹스하는 사람이고, 성년은 눈을 바라보고 하는 사람 아닐까요. 어른이 된다고 성숙해지는 건 아니죠. 감독, 배우, 선배, 기자, 부모 모두 따지지 말고 친구가 됐으면 해요. 이성간에 연애할 때도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좋겠어요.”(양익준)


부지영은 “나이 들면서 제일 싫은 건 내가 누군가에게 ‘꼰대짓’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양익준에게 맞장구쳤다. 양익준은 부지영의 영화를 보고 “일상 속 낯선 환경에서 일어나는 흥분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지 못하는 건 같다. 일상에서 스스로의 놀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둘은 비슷한 경력을 이어오고 있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각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부지영)와 <똥파리>(양익준)를 최초로 상영했고, 이듬해 4월 한 주차로 개봉했다. 이후 각자 단편 한 편을 찍었고, 이번에 중편으로 만났다. 성공적인 데뷔작을 찍은 감독들은 두번째 영화를 더 잘만들어야 한다는 내외의 압박에 시달린다. 두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양익준은 <똥파리> 이후 영화적 욕구가 거의 고갈됐다고 했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해야했다. “창작하는 사람이 바닥까지 긁어 만든다는 건 슬프지만, 그런 상태에서 나온 <미성년>인만큼 내가 더 사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성년

양익준이 ‘예쁜 누나’라고 표현한 부지영은 자신의 한 작품을 두고 “주변에서 아무리 잘했다 해도 부끄러운 영화가 있다. 감독은 민감해서 알아챌 수밖에 없다”며 “요행을 바라기도 하지만 잘 안된다”고 말했다.

둘을 만난날 오후, 양익준은 술이 덜깬 듯 부스스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는 “일부러 주기적으로 스스로 정신을 부서뜨린다. 술을 마시고 제로가 되면 전날 술자리에서 헛소리한게 너무 싫고 자괴감이 드는데, 그때 오히려 말 똑바로 하고 술 적게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고 말했다. 부지영은 오랫동안 준비하던 멜로 영화 시나리오를 엎었다. 진도가 안나가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서야 “내가 아는 멜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멜로를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정호수의 맛>은 다음 영화를 시작할 용기를 줬다.


부지영과 양익준 모두 당장 돌입하는 프로젝트는 없다. 모든 영화가 그렇겠지만, 두번째 장편을 언제 만날지 기약도 없다. 그러나 남이야 뭐라든 당당하게 사랑하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두 감독들은 영화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