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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세 편의 책-<몸으로 역사를 읽다>, <통증연대기>, <중세 몸의 역사>



▲몸으로 역사를 읽다


한국서양사학회 엮음 | 푸른역사 | 404쪽 | 1만8500원

당신의 몸은 당신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당신의 몸을 두고 한 사회의 문화, 경제 조건, 종교 권위, 정치 권력이 쟁투하고 있다. 당신의 다이어트 전략, 당신의 학교와 직장 내 몸가짐, 심지어 당신의 성적 취향까지. 당신이 자연에서 물려받은 본성만으로 구성한 것은 없다.

몸을 이 같은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는 현대의 학자들은 미셸 푸코의 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등 학자는 물론 천재적인 예술가 찰리 채플린까지 이 같은 관점을 진작 견지했다. 하지만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식, 권력, 주체의 작용을 푸코처럼 진득하고 다양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1975년 쓰여진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병원, 감옥, 병영, 학교 같은 제도를 통해 권력이 몸에 각인되는 풍경을 그렸다. 이듬해 나온 <성의 역사> 1권인 ‘앎의 의지’에서는 “욕망은 억압의 원인이 아니며 오히려 억압의 결과로 욕망이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성에 대해 억압적이었던 19세기 영국이 사실 성에 대한 수다로 넘쳐났던 역사적 사실은 그 예다. 이후 몸에 대한 논의는 푸코가 제시한 화두를 다양하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고대 로마에서도 몸을 둘러싼 권력의 충돌을 읽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섹스투스 왕자가 콜라티누스의 정숙한 아내 루크레티아를 강제로 범했다. 루크레티아가 이를 계기로 자살하자, 그녀의 남편과 동료 브루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광장(포룸)으로 가져간 뒤, 독재자의 학정을 성토한다. 이는 로마에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선 계기가 됐다.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상이한 묘사를 접하면 논의가 복잡해진다. 리비우스(BC 64~AD 12)의 <로마 건국사>는 루크레티아의 죽음 이후 벌어진 남성들의 결의, 분투, 공화정의 성립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오비디우스(BC 43~AD 17 즈음)의 <로마의 축제일>은 루크레티아의 얼굴, 맵시, 성폭행 당시의 모습을 포르노적으로 묘사한다. 리비우스적 시각을 따르면 “여성의 몸에 가해진 성폭력은 강력한 제국의 토대를 닦는 첫 발걸음이자 디딤돌”이었다. 즉 여성의 몸은 “정치적 ‘우리’의 형성을 돕는 스펙터클”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여성의 신체 이미지 재현도 흥미롭다.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기존 사회의 시선은 차가웠다. 보수적 대중지의 만평에 나타난 여성 운동가들은 매력 없고 사랑받을 자격을 잃은 부적격자였다. 납작한 가슴, 강퍅한 표정의 심술궂은 노처녀거나,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를 내팽개친 아내였다. 참정권 운동 진영은 의외로 순응적이었다. 이들은 날씬한 몸매에 부드러운 표정, 맵시있는 옷을 입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이미지가 담긴 포스터를 제작함으로써 기존 사회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여성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했다.

남성의 육체도 문제가 된 적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돌아온 영국 부상병들이 그 사례다. ‘죽어서 돌아온 자’는 국가의 공식적인 기념의 대상이 돼 전후 국민의 통합과 재생에 이바지했다. 문제는 ‘살아서 돌아온 자’였다. 이들은 ‘목에 걸린 가시’였다. 부상병의 몸은 전쟁을 잊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상흔을 상기시켰고, 그 사이 강해진 여성에 비해 약해진 남성을 드러냈으며, 인구 감소에 대한 우생학적 불안을 체현했다. 자조와 자립을 이상으로 삼는 빅토리아 시대 남성성이 손상됨으로써, 남성성을 폭력적으로 재건하려는 우생학과 파시스트 남성 미학이 반동적으로 나타났다.

한국서양사학회가 개최한 제13회 전국학술대회 ‘서양에서 몸과 생명의 정치’에 발표된 글들을 보완해 재편집한 책이다. 학술 논문이지만 대중이 읽기에 무리가 없다. 각 장들이 유기적 완결성을 갖고 있진 않지만, 다양한 주제와 시선의 글들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통증연대기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444쪽 | 2만원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 대부분의 종교에서 인간은 고통받는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온갖 고통에 시달린다. 이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종교를 분류할 수 있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기독교를 따져보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그들은 가르친다. 그런데 인간은 왜 통증을 느끼는가. 이에 대답하는 주인공들이 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은 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이후 아담은 신체 통증을 느끼는 노동을 해야 했고, 이브는 산고(産苦)를 겪어야 했다. 욥은 이유 없이 고통당한다. 사탄과 하나님의 내기에 휘말린 욥은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킨다. 여기서 통증은 신앙심이 씨앗을 내리는 토양이 된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그는 통증을 피하겠다는 육체의 본능을 이겨냄으로써 영적인 스승이 됐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 사람들은 통증을 과학이 아닌 은유의 영역에서 파악했다. 내가 아픈 것은 세균 감염, 근육 경련, 혈액 순환 장애 때문이 아니라 날개를 펼친 마신이 찾아오거나, 최초의 인간이 원죄를 지었거나, 친구의 연인을 탐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결핵은 미코박테리움 투버쿨러시스, 즉 결핵균 때문이 아니라 “탈속을 추구하는 영혼과 육체의 투쟁”의 결과이며 “유한한 육체가 시들어갈수록 아름다움과 창조성이 고양된다”고 여겨졌다.

19세기 중엽 이후 통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의학은 고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1848년 발간된 ‘피플스 저널’은 에테르 기체를 흡입하는 마취법으로 수술 통증을 없앨 수 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신의 손을 떠난 통증은 벌, 고난, 시험이 아닌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이 됐다. 물론 저항은 있었다. 마취를 통한 수술법은 처음 소개된 이후에도 금세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1872년 미국 치과의사협회 회장은 “통증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사탄의 활동”이라고 말했다. 무통 분만 역시 “수고하고 자식을 낳으라”는 신의 명령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논란에 휩싸였다. 다윈과 프로이트가 다시 반박했다. 인간에겐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본성이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통증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기독교 관념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통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급성 통증은 조직이 손상됐을 때 일어나는 건강한 반응이다. 조직이 손상되거나 병에 걸리면 몸이 경고를 보낸다. 발목이 부러졌는지도 모르고 걸어다니면 다리 전부를 잃을 수도 있으므로, 통증은 발목을 아프게 함으로써 휴식을 강권한다. 이 건강한 반응은 상처가 나으면 사라진다. 반면 만성 통증은 자연적으로 치유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된다. 만성 통증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보기와 같아서, 사람을 진 빠지게 한다.

기실 병에 대한 의사의 치료법은 크게 바뀌었을지언정, 통증에 대한 환자의 대응은 고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만성 통증을 둘러싸고 의사와 환자의 대립이 생긴다. 의사는 다 나았다고 진단하는데 환자는 여전히 아프다고 호소한다. 원인을 찾지 못한 의사는 환자의 심리적 요인, 즉 꾀병을 의심한다. 그동안 의사는 통증에 대한 환자의 하소연을 들어주는데 인색했다. 환자를 백지 취급하는 의사는 환자가 정확한 정보를 가진 자신의 진단 앞에 꼬리를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증은 어디까지나 환자의 것이다. 통증 관리·간호 분야의 권위자 마고 매캐프리는 “통증을 경험하는 사람이 통증이라고 말하는 것이 통증”이라고 말했다. 매캐프리는 현대적 통증관을 대표한다. 통증은 뇌의 여러 부분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해 생기는 것인데, 과학 연구를 토대로 삼지만 비과학적 모델에 담긴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다. 수술대 위의 환자가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했을 때, 의사가 “기도는 수술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야기 치료, 첨단 중매업, 이혼, 음식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미국의 신문과 잡지에 기고해온 저술가다. 2001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청탁을 받아 쓰기 시작한 <통증연대기>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자, 2010년 옵서버 선정 논픽션 분야 최고의 책에 선정됐다. 실제 만성 통증을 경험하고 있는 저자의 체험담이 적절한 순간마다 녹아있다. 저널리스트적인 대중성과 전문가적인 식견이 고루 들어있는 교양서적이다.


▲중세 몸의 역사

자크 르 고프·니콜라스 트위옹 지음·채계병 옮김 | 이카루스미디어 | 270쪽 | 1만3000원

자크 르 고프의 책은 <연옥의 탄생>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난삽하긴 해도 남은 것이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중세 몸의 역사>는 그저 난삽하다. 중세에 몸은 억압과 찬미, 모욕과 숭배 사이의 긴장, 균형, 동요를 경험했다, 는 것이 책의 요지다.  몸을 억압한 사순절, 몸을 해방한 사육제의 두 가지 키워드로 이런저런 현상들을 나열한다. 몸에서 나오는 액체인 정액과 피는 금기시 됐지만, 반대로 그리스도의 피는 성스러웠다, 는 식의 나열이 이어진다.

성교는 출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허용되었기에 "아내를 너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본 성직자들의 견해, 후배위로 성교했을 때는 "열흘간 물과 빵으로 회개"하도록 했다는 식의 규칙들이 중세 법령들이 소개된다.

중세를 다룬 영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이 채찍질로 스스로를 때리는 고행인데, 이런 사람들이 흔히 반교권주의적이고 유대인을 배척하는 폭력적 행동에 빠져들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육체에 대한 찬양과 멸시의 길항은 피터 브뤼겔의 <사순절과 사육제의 싸움>에 잘 드러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쓰고 보니 재미있네.


피터 브뤼겔, <사순절과 사육제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