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정식 요리가 맛있어 보이는 영화.

아이스티 맛있겠다. 머리 세팅하기 힘들겠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말 부지런할 것 같음.

할 말은 있는데 말할 방법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일 개봉하는 <헬프> 속 흑인 가사도우미들이 그런 처지였습니다. 배경은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의 소도시 잭슨. 미국에선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없어졌지만, 보수적인 잭슨시엔 실질적으로 인종차별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상류층 백인 여성들이 미용과 사교와 머나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행사를 여는 사이, 흑인 가사도우미들은 음식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빨래를 했습니다. 이 시기, 이 동네에서 흑인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가사도우미가 된다는 걸 뜻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 할머니가 모두 가사도우미였기 때문입니다. 흑인 가사도우미는 백인 안주인과 화장실을 공유하지 못했고, 버스에서도 유색인종 전용좌석에 따로 앉아야 했습니다.

백인 중산층 가정의 딸이자 작가 지망생인 스키터는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삶에 다가가려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흑인들은 백인의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말하는 방법을 모르고 용기가 없었습니다. 결국 굳센 흑인 가사도우미들과 당찬 백인 아가씨는 주류 백인 사회의 위선과 편견에 똥칠을 할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나 집필중'이라는 표정. 안쓰던 안경은 왜 쓸까.

영화에서 스키터는 구술사 채록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이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에서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 민중의 목소리를 인터뷰를 통해 담아내는 일입니다. 미국에선 남북전쟁 이전부터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를 적어 출판한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1970년대 경제 발전기를 떠올려 봅시다. 국가는 대기업에 온갖 특혜를 제공했고, 대기업은 이에 화답하듯 ‘수출보국’의 깃발을 내걸고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국가는 다시 산업훈장 같은 것으로 기업인들을 치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인이 자신들의 편의를 봐준 국가 지도자에게 비공식적인 답례를 했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바입니다. 언론은 국가와 기업의 찰떡궁합을 윤색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업과 국가의 기층에 자리한 노동자는 어땠습니까. 국가와 기업의 요란한 자화자찬 속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20대 남성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말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선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큰 '변'을 당하는 백인 안주인.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걸까요. 똑같은 일이 2011년에 일어났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요란하고 수상쩍은 상표가 붙은 세상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 노동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85m 고공 크레인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300일, 이제야 그의 말소리를 듣겠다는 사람이 조금 늘어났지만 그가 크레인 아래로 내려올 만큼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은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민담에 나오는 소복 입은 처녀귀신이 한 예입니다. 처녀귀신이 갓 부임한 사또를 한밤에 찾아오는 이유는, 그들을 놀라게 해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타나기 전에 사람 말 좀 들읍시다.

위는 <헬프>, 아래는 <트리 오브 라이프>. 둘 다 제시카 차스테인. 사전 정보 없이 두 영화 보고 같은 배우인줄 알아챘다면 그 안목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