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가 제4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15개 트로피를 가져간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간다. 해묵은 '공정성' 시비도 나온다. 그러나 대종상 영화제측이 밝힌 말을 믿는다면, 올해 대종상은 그 어느 때보다 '공정'했다! 심사위원들은 함께 영화를 본 뒤 각자 투표를 했고, 점수는 시상식 직전에야 합산돼 수상자가 정해졌다고 한다. 즉 심사위원들조차 <광해>가 그토록 많은 상을 가져갈지 몰랐다는 이야기다. 


<광해>를 배급한 대기업이 심사위원 개개인에게 로비를 했다거나, <광해>가 <피에타>보다 못한 영화인데 상은 더 많이 받았다거나 하는 소리는 하지 말자. 그건 증명할 수도 없고 모두를 수긍시키기도 힘든 이야기다. 오히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건, 이번 대종상 시상식이 누구보다 '공정'하려 했음에도 왜 '불공정'하게 보였는지에 대해서다.


사실 영화 시상식은 그 어느 시상식보다 '정치적'이다. 프로야구의 MVP나 축구의 최우수 선수를 선발하는데는 적어도 몇 가지 확연히 참조할 수 있는 숫자가 있다. 타율, 홈런, 승수, 골, 어시스트 등이다. 축구의 성적은 야구보다 계량화가 힘들다곤 하지만, 그래도 팬과 전문가 사이에는 선수의 기량에 대해 일정 수준의 암묵적 동의가 형성된다. 


그러나 영화의 수준에 대한 동의는 그보다 훨씬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해 <밀양>이 <디워>보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증하는가. 모두가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처하고, 모두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전파하는 시기다. 영화에 대한 목소리는 어지럽다. 작품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선 신의 권위라도 빌려와야할 판이다. 


그럼에도 <디워>와 <밀양>이 동시에 출품된 영화제가 있다고 할 때, 우리가 <밀양>에 상을 줄 수 있는 건, 영화가 현재 품은 가치, 영화와 세상과의 접점, 영화의 미학적 가능성에 대해 소수의 전문가들이 일정 수준에서 합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오늘 보여준 성과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영화가 가진 씨앗에 물을 뿌려 싹트게 하는 편이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영화의 판도가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영화제 심사위원들 사이에는 일종의 '숙의'가 이뤄진다. 각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력과 식견을 쌓아온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해당 작품의 성과를 놓고 격렬하게 투쟁한다. 물론 이 투쟁이 잘못된 방향으로 결론날 수도 있다. 훗날 돌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작품에 상을 준 영화제가 하나 둘이었나. 그럼에도 영화상은 영화의 오늘을 축하하고 내일을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트위터에서였나.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에 대한 비아냥이 있었다. 국회의원 수와 정당 보조금을 줄여 청년실업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안철수의 제안에 대해, "그렇다면 아예 국회나 법원을 없애고 전 국민에게 여론조사 기계를 줘라"는 반응이었다. 감세안 통과. 아동성범죄자 거세, 유영철 사형, 북한에 선전포고, 일본에도 선전포고, 외국인 노동자 추방....'여론조사 정치'가 불러올 결과는 이런 것일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숙의를 필요로 한다. 까다로운 말의 성찬이 있어야 한다. 격렬한 말싸움이 있어야 한다.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심사위원의 토론과 '배려'가 없다면, 그건 상이 아니라 여론조사다. 그것도 다수가 아닌 심사위원 14명의 여론조사. 


영화에 상을 준다는 건 그렇게 미묘하고 절묘한 일이다. 심사위원들의 명예와 경력이 걸린 일이다. 기억나는 정성일의 말을 비튼다면, 훗날 후진 영화로 밝혀진 영화에 상을 주었다면 그 심사위원의 취향도 후진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여론조사에 맡기다니. 심사위원들도 참 딱했다. 



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