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어렵게 읽은 김에 현대 미국 작가의 소설을 좀 더 읽고 싶어졌다. 책꽂이를 살피니 필립 로스의 두 권짜리 책이 있었다. <휴먼 스테인>. 난 보지 못했지만, 앤서니 홉킨스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읽어보니 <휴먼 스테인>은 영화 제작자들이 탐낼만한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인습을 넘는 사랑, 그에 대한 질투, 살인, 오해 받는 남자, 인종 갈등, 가족간 불화 등. 이 소설의 통속적인 고갱이만 뽑아내니 이렇다. 허나 영화가 소설을 얼마나 담아냈는지는 좀 궁금하다. (솔직히 회의적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배우다. 70대에 접어들어서도 젊은이같은 활력을 보이며, 자신의 주장에 굽힘이 없고, 오만한데다 독선적인 동시 지적이며, 세상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오해하기 시작하자 그냥 자신의 평생 성과를 뒤로 한 채 은둔해 딸뻘의 여자와 나누는 육체의 쾌락에 탐닉해 살면서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은근히 노리는 이 노인을 연기할 배우로 홉킨스 말고 떠오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이 콜먼 실크라는 남자의 복잡함은 2시간 남짓한 퍼포먼스로 육화해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 직후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모두가 모두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미국 사회의 가짜 도덕주의를 비아냥댄다. 70대의 콜먼 실크와 30대의 문맹인 백인 여성 포니아 팔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쑥덕댄다. 이 쑥덕댐의 선두주자는 사소한 오해를 빌미삼아 콜먼 실크를 대학 강단에서 몰아내는데 앞장선 프랑스 출신 젊은 여교수 델핀 루다. 루에 대한 묘사는 정말 신랄하다. 미국 소도시의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서 20대에 학과장을 맡을 정도의 실력이 있고, 외모도 꽤 괜찮은 것으로 묘사되는 루는, 뼈대 있는 구대륙의 가문을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신대륙으로 건너왔다고 자부하지만 그 자부심의 뼈대가 허약하며, 그래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데조차 솔직하지 못하고, 그러므로 그녀의 지적인 성취란 것도 대개 속물들의 스탠딩 파티에서나 유용히 쓰일법한 허영에 불과하다. 독자에 따라서는 필립 로스의 '꼰대성'을 의심할 수도 있겠다. 


글의 제목을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라고 쓰긴 했지만, 실크와 팔리의 사랑은 나이로 규정되지 않는다. 고전 그리스 문학의 대가와 청소 노동자라는 차이도 그들의 사랑을 규정하진 않는다. 실크는 팔리가 얼마나 섹스에 능한지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살에도 눈이 있어." 이렇게 그들은 더없이 좋은 섹스 파트너다. 하지만 그것이 남녀 관계의 모든 면모를 말하지는 않는다. 실크와 팔리의 관계에는 섹스로 해소되지 않는 잉여가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실크는 그것만 충족되면 좋지만, 가진 것이 없는 팔리는 그것을 충족해도 여전히 허전하다. 팔리가 갖고 싶은 것? 모른다. 독자는 그저 팔리가 실크로부터 받은 비싼 반지를 까마귀의 장난감으로 던져주는 대목에서 팔리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필립 로스(1933~)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성의 육체에 끌리는 이야기를 읽으니 김훈의 단편 <화장>도 그러한 주제를 다룬다는 소문이 생각났다. 서울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놓은 끝에 <2004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담긴 <화장>을 읽을 수 있었다. 김훈은 물론 필립 로스 같이 지적으로 화려한 논변을 구사하진 않는다. 남자는 화장품 회사의 임원이다.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병수발을 드는 남자는 회사에 갓 입사한 절은 여직원에게 끌린다. 머리가 빠지고 똥을 지리고 '구린내가 난다'며 먹지도 못하는 아내와, "살아 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찬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신입 사원 추은주가 대비된다. 


허나 이 남자는 콜먼 실크와 달리 추은주에게 일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임원인 남자와 신입사원인 추은주 사이의 거리 때문이라 하기엔, 노교수 콜먼 실크와 그 대학의 청소 노동자 포니아 팔리의 거리가 더 멀다. 물론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다른 젊은 여성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부도덕하게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한 채 추은주를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콜먼 실크에 비해 어딘가 찌질해 보인다. 생전 아내가 아끼던 개를 안락사시키는 마지막 대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노년 남자의 괜한 히스테리를 목격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