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날씨가 좋기에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가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사이, 얼굴에 웃음을 띤 젊은 여성 몇 명이 다가왔다. 오늘은 부활절. 인근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예쁘게 포장된 달걀을 나눠주러 온 것이다. 아이는 넙죽 받았다. 

아이와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짜장밥. 별 생각 없이 식탁 위에 놓아둔 달걀을 아이는 계속 가지고 놀려 했다. 그러고보니 짜장면에도 삶은 달걀 반 쪽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난 달걀을 까서 아이에게 주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노른자를 먹지 않았다. 처음엔 밀쳐내더니, 다음엔 무심코 먹었다가 뱉어냈다. 대신 흰자는 다 먹었다. 이게 놀라운 이유는, 나도 노른자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계란 과자, 스크램블드 에그, 오믈렛 같은 것은 먹는다. 하지만 노른자만 따로 있는 음식은 먹지 않는다. 계란 후라이라든가, 냉면 위의 삶은 계란 같은 것. 흰자는 먹지만 노른자는 안먹는다. 노른자 특유의 구린 냄새가 싫어 어릴 때부터 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 최초의 기억은 노른자에 대한 것이다. (나보코프는 요람에 누워 나무 그늘 사이로 이동한 순간의 기억을 자서전에 적었지만, 난 그런 '비범한' 작가가 아니다.) 어린 시절엔 노른자를 먹으면 헛구역질이 났다. 엄마는 내가 편식을 하는줄 알았던 것 같다. 몇 번이고 노른자를 다 먹지 않으면 식탁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강제하곤 했다. 그렇게 세 차례 정도 눈물을 흘리며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를 다 먹은 적이 있다. 노른자를 손톱만큼 먹고 물을 반컵 마신다. 다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입술에 묻은 노른자가 투명한 물 아래로 먹물처럼 퍼져나가는 걸 봤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계란 후라이의 노른자를 다 먹었다. 노른자 빼고는 달리 편식한 것도 없는 듯한데, 왜 굳이 노른자를 먹어야 했을까. 엄마는 결국 포기했다. 난 이후에도 노른자를 먹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때 그 테이블에서의 노른자는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오늘같은 날 불현듯 그 순간이 기억나니까. 그리고 대체로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도 유독 뚜렷한 풍경이니까. 

노른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어서 신기하고 반갑다. 아이야, 걱정 말아라. 노른자 같은거 안 먹어도 비교적 멀쩡하게 자랄 수 있단다. 



사진 속 계란은 본문과 관계 없음. 회사에 방문한 한 카톨릭계 출판사에서 주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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