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라는 이데올로기>(현실문화)는 혼란스럽다. 여러 분야에서 분명했던 사고의 경계선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누가 억압했고 누가 억압당했는지, 누가 전쟁하자 했고 누가 평화를 주장했는지, 누가 친일파이고 누가 반일파였는지, 알 수가 없다. 


저자인 고영란 니혼대 국문학과 교수(45)의 의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e메일로 만난 그는 “역사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을만큼 간단 명료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전후라는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이데올로기, 집단기억의 프레임을 검토한다. 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서 이웃 나라들을 침범했던 일본은 미국의 점령기 동안 ‘평화로운 일본’, ‘약한 일본’, ‘피지배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이를 위해 20세기 초반 일본의 진보적 사상가, 문학자들의 글을 소환한 뒤 ‘세계 평화’의 표상으로 유통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수상하다. 침략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의식하던 이들은 미국, 냉전이란 단어만 만나면 갑자기 식민지 지배자, 침략자로서의 문제의식을 망각했다. 원폭, 대공습의 기억과 현실 속의 ‘강한 미국’ 이미지 역시 스스로를 ‘무참히 당한 일본’, ‘식민지 일본’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것이 고영란이 지적하는 ‘전후 프레임’이다. 고영란은 “전후 프레임은 당시의 냉전 구조와 연동관계에 있었다”며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기억방식도 일본의 전후 프레임과 비슷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과거 수많은 이야기들 중 일부를 드러내고 대부분을 감추는 작업이다. 고영란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포착한다. 역사 속에서 신화화된 것을 해체하면서도, 새로운 신화를 쓰려는 욕망은 거부한다. 고영란은 이를 위해 개개의 논문, 문장을 쓰고 수업을 할 때 ‘전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천황의 연호도 쓰지 않는다. 


기실, 일본에서의 전후 프레임은 이미 해체되고 있다. 결정적 계기는 물론 2011년 3월 11일의 대지진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새롭게 떠오르는 3·11 프레임에 의해 작동되는 수사, 즉 ‘강한 일본’이다. 그는 “방사능, 쓰나미 등의 재해가 인종 구분을 하면서 덮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눈앞의 선거 공약을 보면 ‘일본인’을 염두에 둔 정책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충분히 걱정스럽다.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등 유력 보수정치인들이 ‘오타쿠 문화’의 수용자를 자처하면서 친근한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고, 일본 아이돌 AKB48의 팬과 현 보수 정권의 지지자가 겹치는 상황이다. 여세를 몬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헌법 개정, 국방군 창설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다. 


고영란은 “선거가 끝나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서도 “일본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데모를 하는 사회’, ‘저항운동을 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으며, 방사능 피해는 오히려 인종, 민족의 경계를 흔들었다. 그는 “저항운동의 내부는 조직화가 돼있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늘 대립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며 “이런 마찰을 표출시키면서도 운동 자체를 멈추지 않는 점에 관심과 기대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전남대, 경희대에서 수학한 고영란은 20년전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 학계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화자가 일본에서 일본 학생에게 일본어로 문학을 가르치는 셈이다. 문학에서는 언어의 뉘앙스, 문화적 배경이 중요할테지만, 고영란은 “주변의 일본 연구자들이 오히려 나를 부러워한다”고 답했다. 초·중·고·대학 교육을 일본에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문학’, ‘국민작가’에 겁없이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인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뉘앙스의 이면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문제는 한국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 탄생한 아베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양태가 이 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시한 일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게 분석했다. 그는 “워킹 푸어, 88만원 세대, 자살, 취업 문제 등 한국과 일본의 신문, 잡지를 읽으면 때때로 어느 나라 상황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며 “한국과 일본 소설의 독자가 소설 속 상황, 일본어 또는 한국어로 표기된 고유명을 읽으면서 그것을 단순히 ‘외국’문학이라 거리를 두고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