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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신남의 연애 소설, 헨리 제임스와 <데이지 밀러>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몇 편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다지 재미없었다는 인상만 남았다. 이든, 이든 마찬가지였다. 은 '유령 나오는 이야기'였다는 기억은 나는데, 은 심지어 읽었음에도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제임스는 '영문과 학생들이 보면 되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터. 보르헤스가 선별한 제임스의 단편집 를 읽고선 마음이 바뀌었다. 제임스는 절정의 리얼리스트이자 이른 모더니스트로 평가받지만, 보르헤스는 제임스의 이야기 중에서도 환상 소설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을 골라냈다. 더욱 내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제임스가 자신의 소설을 결말 직전까지 리얼한 방식으로 끌고 가다가, 뜬금없이 환상적인 요소를 삽입해 마무리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면 독자는 황당해하면서 화를 내거나,.. 더보기
또 하나의 그라운드 제로. 3.11을 생각한다 <사상으로서의 3.11> 사상으로서의 3·11 쓰루미 슌스케 외 지음·윤여일 옮김/그린비/272쪽/1만5000원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만든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정갈한 도시가 지진 해일 속으로 사라졌다. 당황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세계를 불안에 떨게했다. 고도성장, 안전, 혁신적인 기술 등은 이제 의미없는 말이 됐다. 일단은 살기 바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폐허 위에도 사유의 싹은 자란다. 이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1922년생 쓰루미 슌스케부터 1973년생 사사키 아타루까지 18명(혹은 팀)의 일본 지식인들이 급히 글을 썼다. 은 지난해 3, 4월 집필돼 6월 일본에서 '긴급간행'된 책이다. 먼저 재난을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자세부터 갖.. 더보기
부끄러운 삼위일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이 영상을 본 뒤 걸프전의 야간 투시 기법 촬영을 떠올렸다는 덕후, 미스터 피터 노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피터 노왁 지음·이은진 옮김 | 문학동네 | 432쪽 | 1만7000원 현대의 과학 기술은 인류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의 상대와 실시간 채팅을 한다. 속이 든든해지는 햄버거 세트를 3000원에 사먹을 수 있다. 거실의 로봇 청소기는 스스로 먼지를 찾아 없앤다. 인류는 더 이상 배곯지 않고 편리한 삶을 누리며 온갖 즐길거리에 둘러싸여 있다. 다 과학 기술 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추동했을까. 삶의 질을 높이기로 다짐한 기술자의 헌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과학자의 노력? 굶주리는 이웃에 대한 농부의 연민? 과학 기술에 대한 글.. 더보기
당신의 한 표가 사람을 죽인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지음·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76쪽 | 1만3000원 1966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대, 뉴욕대에서 정신의학 교수로 재직해온 제임스 길리건은 폭력의 심리적 메커니즘과 그 예방책을 연구해왔다. 20세기 미국의 살인율과 자살률 통계를 살피던 그는 이 두 가지 수치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길리건은 자살과 타살을 아울러 ‘폭력치사’라고 부르는데, 이 수치는 조사기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갑작스럽고 큰 규모로 오르내렸다. 무엇이 폭력치사 수치를 오르내리게 했을까. 길리건이 얻은 결론은 상당히 놀랍고 꽤 선동적·선정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보수가 집권하면 사람이 죽는다. 는 2011년 미국에서 처음 나왔다. 책의 원제도 번역 제.. 더보기
사회주의 슈퍼히어로 <강철군화> 잭 런던이 1908년에 발표한 를 두고 '소설 자본론'이라는 평가도 있는 모양인데, 저승의 마르크스가 통곡할 소리다. 물론 이 소설이 그리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과 뒤이은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실현은 마르크스가 꿈꾼 역사의 발전이기는 했을테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이 그리 단순하게 요약될리 없지 않은가.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가 에이비스 에버하드가 죽은 후 700년 뒤, 그녀의 원고가 발견돼 공개한다는 액자식 설정을 갖고 있다. 앤서니 메러디스가 인류형제애 시대 419년에 쓴 서문이 액자의 틀이다. 에이비스가 남편 어니스트에 대해 남긴 기록이 소설의 골자다. 메러디스는 어니스트를 두고 "수많은 영웅 중 한 명일 뿐"이라고 다소 깎아내렸는데, 에이비스는 당연히도 남편을 유일한 영웅처럼 소개한다. 어니스트 에버하드는.. 더보기
살아남아야 할 괴물. <모비 딕> 본문만 684쪽인 장편을 읽었으니 무슨 말이든 한 마디 남겨야겠는데, 선뜻 모르겠다. 초반 100쪽은 '이렇게 재밌는 얘기가 있나' 싶어 읽었는데, 막상 피쿼드 호가 출항을 시작했는데 고래 한 마리 나타나지 않고, 또 그 사이를 틈타 이슈메일은 고래의 생태니 포경업의 유래니 전설 속의 바다 괴물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밑도 끝도 없이 하니, 이게 고래 백과 사전인가 장편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서 차라리 도판이 들어있는 4만8000원짜리 책을 샀으면 고래에 대해선 박사가 됐을텐데 돈 아낀다고 2만원짜리 그림 없는 책 샀다가 읽기 힘들기만 하다고 후회하다가, 그래서 중간에 교보문고에 가서 고래 그림 구경이라도 하려고했는데 광화문점에는 품절이라고 없어서 헛수고하고 오기도 하고. 텍스트와 큰 관련 없.. 더보기
평등은 좌파의 표어가 아니라 시대정신이다 <평등이 답이다> 책세상에서 낸 개념사 시리즈 도 조만간 읽어야겠음. ▲ 평등이 답이다…리처드 윌킨슨·케이트 피킷 지음·전재웅 옮김 | 이후 | 448쪽 | 2만1000원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들이닥쳤을 때, 미국 뉴올리언스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망자가 최소한 1836명, 실종자는 700명이었다. 인명사고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뉴올리언스에서는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이룩했던 문명이 사라졌다. 카트리나 이후 수주 동안 약탈, 살인, 방화, 강간, 기아가 이어졌다. 투입된 군대는 사람을 구출하거나 구호품을 전달하는 대신, 약탈자를 찾는 데 집중했다. 그것이 21세기의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미증유의 자연재해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2008년 중국의 대지진, 20.. 더보기
빨치산이 된 철학자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 1949년 12월4일자 동아일보에는 “약 2주일 전 태백산 전투에서 적의 괴수 박치우를 사살하였다”는 육군총참모장의 발언이 보도됐다. 이것이 해방공간에 월북했다가 다시 남으로 내려와 무장 투쟁을 벌인 한 빨치산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그러나 그는 빨치산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다. 박치우(사진)는 이후 한국 철학계의 거두로 자리 잡은 박종홍(1903~1976)과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제5회 동기였으며,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몰래 복사해 돌려 읽던 마르크스주의 철학서 의 저자였다.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철학자 박치우의 삶과 사상을 본격적으로 살핀 책이 처음으로 나왔다. 위상복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도서출판 길)이다. 박치우는 1909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개신교 목사 박창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 더보기
렘브란트 구하기 <모뉴먼츠 맨> ▲ 모뉴먼츠 맨 로버트 M 에드셀·브렛 위터 지음·박중서 옮김 | 뜨인돌 | 624쪽 | 3만3000원 사진 오른쪽의 남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제7군 소속이었던 해리 에틀링어 이병이다. 그는 독일 남서부의 도시 칼스루에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살 해리가 유대교 전통의 성년식인 미츠바를 치른 직후인 1938년 9월, 에틀링어 가족은 모든 재산을 남겨두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해 11월 나치는 독일 내 유대인에 대한 ‘십자군 운동’을 전개했다. 7000여개의 유대인 상점, 200여곳의 유대인 회당이 잿더미가 됐다. 해리가 미츠바를 치른 회당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사람들은 수용소로 강제이주됐다. 해리의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칼스루에 박물관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이 걸작.. 더보기
값싼 전쟁, 비싼 평화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전쟁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공진성 옮김 | 책세상 | 332쪽 | 2만원 전쟁은 어디서 누가 왜 벌이는가. 그 유명한 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기틀이 잡힌 뒤인 18~19세기 군인이었던 그에게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속”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가 벌이는 것이고, 전쟁의 목표는 분명해야 하며, 전쟁이 언제 시작하고 끝날지는 확실하다. 전투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적의 용기를 꺾어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의 하나다. 최고지휘관도 인간이기에 학살은 피하려 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간인을 해치는 것은 금기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정치학자 헤어프리.. 더보기
애플, 몰스킨, 나꼼수의 인기. <니치> 지금 팔리는 몰스킨은 사실 1997년 처음 나온 브랜드라는 놀라운 사실. 그들은 헤밍웨이, 마티스, 피카소가 '몰스킨'을 썼다고 홍보하지만, 이때의 몰스킨은 '기름먹인 가죽 재질의 양장본 수첩'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에 가깝다는 사실. 결국 지금의 몰스킨사는 '아방가르드의 추억'을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뿐. ▲ 니치… 제임스 하킨 지음·고동홍 옮김 | 더숲 | 336쪽 | 1만6000원 1969년 첫 매장을 연 미국의 의류업체 갭(Gap)은 오랜 시간 성공가도를 달렸다.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와 티셔츠는 반항적인 10대와 그들의 부모, 조부모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브랜드 이름은 ‘세대 차이’(generation gap)에서 따왔지만, 갭의 옷은 세대를 포괄해 사랑받았다. 갭은 .. 더보기
믿어서 나쁠 것 없는 신. <신의 뇌>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고 잘 읽힌다. 카렌 암스트롱의 책이 대표적이며, 내 입장과도 비슷했다. 신의 뇌 라이오넬 타이거·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 김상우 옮김 칼 세이건은 “믿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설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간절한 필요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열망하지만 결국은 성취불가능한 윤리적 질서나 생활 방식의 근거로서 신을 찾는다”고 이죽댔다. 카를 마르크스는 더욱 냉소적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지만, 종교에 대한 이 세 사람의 태도는 유사성을 가진다. 종교 혹은 신은 인간의 필.. 더보기
단순하고 급진적인 처방. 이오덕의 <삶과 믿음의 교실> 이날(1월 14일) 신문의 북섹션을 살펴봤는데, 이 책을 짧게라도 다룬 곳은 찾지 못했다. 은 출판 담당을 맡은 뒤 쓴 본격적인 첫 리뷰 서적이다. ▲삶과 믿음의 교실 이오덕 | 고인돌 | 469쪽 | 1만5000원 10대는 아프다, 학부모는 괴롭다, 교사는 힘들다고 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판단뿐, 해법은 수백가지다. 우리 교육을 어찌해야 하나. 가장 단순한 대답이 매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가 있다. 이오덕 선생(1925~2003)은 소박하고 명쾌한, 그래서 급진적인 교육사상가였다. 은 1978년 처음 나온 선생의 교육수상집이다. 1990년대 초반 절판돼 구하기 힘들었으나, 이번에 새로 편집돼 나왔다. 선생은 자신이 정립한 ‘우리말 바로쓰기 원칙’에 입각해 이 책의 교정을 보다가.. 더보기
개념사 교과서. 책세상 비타 악티바 시리즈. <자본주의>, <테러>, <파시즘> 책세상에서 나온 '개념사 시리즈'인 '비타 악티바'('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함)는 좋은 교과서다. '인권'을 시작으로 '아나키즘', '계급', '정당', '생태주의' 등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개념들의 역사와 쓰임 등을 읽기 좋게 정리했다. 물론 교과서에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그래도 비타 악티바에선 장점을 먼저 읽고 싶다. 최근에 읽은 시리즈는 (홍기빈), (공진성), (장문석)이다. 교과서처럼 몇 군데 줄을 치며 읽었고, 그걸 여기에 정리해두고 싶다. 9/11 -구체적 자본재가 아닌 '자본'이란 무엇인가? 클라크에 따르면, 이는 '하나의 추상'이다....'자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428년 출판된 피.. 더보기
몸에 관한 세 편의 책-<몸으로 역사를 읽다>, <통증연대기>, <중세 몸의 역사> ▲몸으로 역사를 읽다 한국서양사학회 엮음 | 푸른역사 | 404쪽 | 1만8500원 당신의 몸은 당신만의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당신의 몸을 두고 한 사회의 문화, 경제 조건, 종교 권위, 정치 권력이 쟁투하고 있다. 당신의 다이어트 전략, 당신의 학교와 직장 내 몸가짐, 심지어 당신의 성적 취향까지. 당신이 자연에서 물려받은 본성만으로 구성한 것은 없다. 몸을 이 같은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는 현대의 학자들은 미셸 푸코의 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등 학자는 물론 천재적인 예술가 찰리 채플린까지 이 같은 관점을 진작 견지했다. 하지만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식, 권력, 주체의 작용을 푸코처럼 진득하고 다양하게 이야기한 사람은 없었다. 1975년 쓰여.. 더보기
통제광, 독재자, 사업가, 슈퍼스타. 가디언의 스티브 잡스 오비추어리. 가끔 하는 취미인 가디언의 오비추어리 번역. 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다소 시큰둥했는데, 다들 하도 이야기를 하기에 가디언의 오비추어리를 찾아봤다. 좀 늦긴 했지만, 스티브 잡스 전기 출간일에는 맞췄다고 억지로 생각해본다. "당신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컴퓨터 관련 용어는 얼렁뚱땅 넘어갔음. 비교하려면 원문으로) 솔직히 잘생겼다. 빌 게이츠는 너드 분위기가 풍기는데, 잡스는 유쾌한 사기꾼 분위기를 낸다.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성공적인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면서 전세계 소비자 가전 시정에 전례없는 파장을 일으켰다. 10여년 전, 그는 파산 직전의 애플을 인수한 뒤 800억 달러의 자산 가치를 갖게.. 더보기
<프로이트의 환자들> 이 이미지를 구글에서 찾다가 느낀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도 상당히 성공했다. '프로이트'로만 검색하니 할아버지의 이미지만큼 손자의 그림도 많이 나왔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은, 만일 죽는 날까지 정식으로 배울 기회는 생기지 않더라도, 그저 오래도록 관련 서적을 보면서 홀로 살펴보고픈 마음이 있다. 프로이트의 방대한 저서들에 등장한 150가지 사례를 통해 정신분석의 개요와 방법을 쉽게 서술한 은 유익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성에 대한 해석 방식 때문에 그와 불화했다. 융이 대표적이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융은 리비도 이론에 대한 프로이트의 집착을 '제발 교회에 나가자고 성화를 부리는 엄마'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융은 프로이트를 떠났다. 허나 꿈에서 길쭉한 무언.. 더보기
슈미트, 마키아벨리, 지젝 칼 슈미트에서 시작해 마키아벨리를 경유해 슬라보예 지젝에 이르렀다,기 보다는 이들의 책이 마침 책꽂이에 있어서 차례로 읽어봤다. 마키아벨리는 이 아니라 에 대한 해설서였다. 이들의 글에 대해 평가할 위치는 안되니, 시간과 노력을 들인 독서의 결과물을 남기기 위해 밑줄 그은 몇 문장을 정리해보겠다. 1888년 태어나 1985년 사망한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한때 나치스의 어용학자였으나 3년만에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나고 종전후 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고 석방된다. 4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그는 기존 학계나 정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이따금 글을 발표했다. 샹탈 무페,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등이 슈미트의 사상에 주목하면서 다시금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1922년 출간된 은 그의 대표작이다. -.. 더보기
직업적 예의,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의 산문집 를 읽다. 이 젊은 평론가의 미문과 안목은 일찌감치 감탄스러웠으며, 역시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그로부터 해설을 받기 위해 대기중이라는 소문까지 들은 적 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신형철의 평론, 특히 시에 대한 것은 매우 매혹적이어서, 그 평론을 읽고 당장이라도 원 텍스트를 손에 넣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곤 했다. 그 시인이 내가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또 하나의 장점은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다. 손에 쥐어진 연필이 없을 때, 난 이런저런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이런 문장들은 밤식빵 속의 밤과 같아서, 글 전체의 식감을 높여준다. 어디 가서 인용하거나 특히 트위터에 올리면 여러 차례 리트윗될 문장들. 글쟁이들에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능.. 더보기
영화의 길, 소설의 길, <7년의 밤> 원론적인 질문. '영화같은 소설'이라는 말은 소설에 대한 호평일까. 올해 나온 가장 뜨거운 한국 소설 을 읽고 떠오른 의문이다. 내 손에 든 책만 해도 20쇄다. 15개 영화사들이 경쟁한 끝에 1억원의 계약금과 5%의 러닝 개런티로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도 있었다. 휴가를 맞아 읽어보니 그럴만하다. 어떻게든 다음 페이지, 다음 페이지로, 결국 결말로 손가락을 이끌어가는 힘이 있고, 취재가 꼼꼼하다. 무엇보다 별다른 각색이 필요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화하기 좋은 영상이 그려진다. 어떤 성급한 독자들은 등장인물 최현수와 오영제 역에 이런저런 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해보면서 즐기고 있다고도 하고. 그러나 그게 좋은 걸까. 영화로 쉽게 번역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일까. 이미 '영화의 시대'를 거쳐온 독자들이 영화적.. 더보기
간디의 두 얼굴,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 한때 '간디 XXX' 이런 유행어가 돈 적이 있는데, 시뮬레이션 게임 시리즈에서 인도를 대표하는 간디가 힘을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와 를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이 시리즈가 '도끼 자루 썩는' 게임이라는걸 알고 있다. 만일 이 나라에 아주 조금만 더 독재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내가 벼락을 맞아 훌륭한 민주투사가 되고, 그래서 내가 가택연금이라도 당한다면, 나는 당연히 시리즈의 최신판을 밀반입해 놀겠다. 간디에 대한 책 리뷰의 서문에 흰소리 했음.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E. M. S. 남부디리파드 | 한스컨텐츠 모든 인간에겐 흠이 있다. 인간적인 약점, 판단 착오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간혹 ‘성인(聖人)’이라는 후광이 덧씌워진 사람에게서 대중은 어떠한 흠결도 보려 하.. 더보기
과학보다 큰 것이 있다-존재하는 신 50여년간 무신론을 옹호했던 철학자가 세상을 뜨기 3년전 유신론자가 됐다. 그는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 신을 믿게 됐다”고 밝혔다. 2007년 출간된 에서 영국의 철학자 앤터니 플루는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옮겨간 자신의 지적 궤적을 서술했다. ‘신의 존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사를 관통하고 근래에는 과학자까지 끌어들여 판을 키운 복잡한 주제지만, 플루는 이 책에서 논쟁의 역사를 비교적 알기 쉽게 정리한다. 원제 역시 간단히 이다. 플루는 우선 감리교 목사의 아들이었으나 무신론으로 끌린 지적 배경을 설명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능하고 완전하고 선한 신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불완전과 악에 모순된다’는 이유로 동급생들과 논쟁을 벌였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이후에는 논의가 더 섬세해졌.. 더보기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베스트셀러 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신작 을 내놓았다. 는 올 가을과 내년 봄에 나올 2권과 3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2006년 를 마무리한 뒤 내놓은 가 ‘쉬어 가는’ 듯했다면, 는 다시 본격적인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다. 는 지금까지 줄곧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내왔던 한길사가 아닌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해외의 유명 저자들을 둘러싸고 흔히 그러하듯, 이번에도 출판사간의 판권(료)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오노는 십자군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1077년 ‘카노사의 굴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의사에 어긋나는 인사를 감행했다. 격분한 교황이 황제를 파문하자, 황제가 교황이 머물던 한겨울의 카노사 성 앞에 맨발로 3일간 서서 용서를 .. 더보기
서부는 어디인가-잭 런던과 코맥 맥카시의 경우 코맥 맥카시(위)와 잭 런던 한반도란 땅덩이는 여기 봐도 사람, 저기 봐도 사람이라 어디 개척하겠다고 나설 데도 없지만, 그래서 한때 확인할 길 없는 '만주 벌판' 운운하는 농담이 나왔겠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과 조건이 달라, 인구가 늘어나 동부 연안이 좁아지자 금이 묻혀있다고 소문난 서부로 달려가는 모험가, 건달, 사기꾼, 부랑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서부엔 샌 프란시스코니, 로스 앤젤레스니, 샌 디에고니 하는 도시들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19세기엔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의 모험 혹은 한탕의 정신은 1세기쯤 지난 뒤 낭만화됐고, 발빠른 영화인들은 서부의 '신화'를 영화로 만들어 장르로 정착시키기도 했고, 아마 소설에도 비슷한 장르가 있는 것 같다. 잭 런던이 태어난 1876년.. 더보기
아렌트의 시대-아렌트 읽기 첫 문장은 명백히 개인 의견이다. 아렌트를 읽을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990년대의 탈근대주의자들은 대체 뭘 한 걸까. “해체할 것이 없을 때까지 해체하라”던 데리다의 주장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원제 Why Arendt matters)의 역자 서유경은 “만일 해체가 기존 체제의 비판 차원을 넘어서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무정란에 불과한 공허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다시 소환된다. 저자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은 아렌트를 사사한 두 명의 수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렌트를 21세기에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세 가지 주요 저서를 통해 소개한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무명의 지식인이던 아렌트는1951년 출간된 을 출간하면서 미국에서 주목받는다. 전체주의란 무솔리.. 더보기
엄마 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아무튼 난 세상 이런 저런 현상의 근원에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흥미롭지만, 사실의 분석이 아닌 상상력의 자극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진 리들로프는 192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올해 3월15일 미국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의 선상가옥에서 세상을 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25세 때 유럽 여행에 나섰다가 완전히 다른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남미 밀림으로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는 두 남자를 만난 뒤 즉석에서 그들을 따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카우라 강 상류에서 석기시대를 유지하며 사는 예콰나족은 리들로프의 삶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75년 처음 출간된 (원제 The Continuum concept)는 예콰나족의 육아법을 통해 본 현대인의 잘못.. 더보기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 <죽음의 친구>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의 를 읽다. '1833년 안달루시아에서 몰락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문명을 떨치다가, 결혼을 계기로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돌변해 순식간에 영향력을 잃었다' 정도로 책 날개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난 아무튼 이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보르헤스가 기획하고 해제까지 쓴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편 와 단편 가 실려 있다. 특히 에서 매우매우 놀랐다. 기구한 운명을 비관해 스스로 거의 목숨을 끊을 뻔 했으나 '죽음'의 방문을 받고 그의 친구가 된 주인공 힐 힐. 힐은 죽음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해(사람이 죽는 때를 미리 알려주는 것) 권력을 누리지만. 종반부에 경천동지할 반전이 있다. 필립 K. .. 더보기
제인 에어 vs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의 는 진취적이고 굳센 의지를 가진 여성상, 적당히 음산하고 기괴한 고딕 분위기, 소설 중반 이후까지 지속되는 미스테리,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는 낭만성 덕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책이며, 여태껏 22번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읽어보면 현대 독자가 받아들이기엔 터무니없는 설정들이 있다. 브론테가 태어난 이듬해 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그런 황당한 설정이 전혀 없다는 점, 현대의 독자를 빨아들이고 현대의 작가를 반성하게 할만큼 합리적이라는 점, 그런 점이야말로 브론테의 '무리수'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로체스터가 "끔찍하리만치 못생긴" 집시 노파로 변장해 제인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점을 쳐주겠다며 접근하는 대목.. 더보기
바르셀로나의 배신, <카탈로니아 찬가> 나도 그랬지만, 아마도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조지 오웰을 의 반공주의자로 알고 있을터다. 그러나 을 보면 그는 반공주의자 이전에 반자본주의자이며, 를 보면 반공주의자긴 하지만 사회주의자다. (사람을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는게 웃기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 을 읽은 김에 더 유명한 까지 읽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즘 진영에 맞서 싸우던 공화파 내부의 분열상에 대해서는 켄 로치의 에서 이미 접한 바 있지만, 로치의 영화조차 가 없었다면 그 뼈대를 세우기 힘들었을 듯하다. 오웰은 이 출간된 직후인 1937년 스페인으로 떠났다. 공화파 의용군으로 입대해 파시스트 몇 놈이라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공화파 의용군은 믿을 수 없을만큼의 오합지졸. 군기는 엉망이고 총쏘는 법조차 알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 더보기
왜 현대음악인가. 진은숙 & 김택수 김택수와 진은숙. 김기남 기자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는 올해로 6년째를 맞은 현대음악 기획공연이다. 상임작곡가 진은숙은 이 공연을 통해 한정된 레파토리에 의지했던 한국의 클래식 음악 시장에 동시대의 새 음악을 꾸준히 소개해왔다. 올해 아르스 노바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다. 아르스 노바 초기부터의 팬이었으며, 진은숙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한 학생 김택수가 쓴 곡 ‘게레레(독주 하프시코드와 앙상블을 위한 운동학)’가 초연된 것이다. 아르스 노바가 한국의 젊은 작곡가에게 자극을 주고,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아르스 노바에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김택수는 과학고를 나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였으나, 졸업후 작곡으로 진로를 튼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최근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스승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