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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민주주의를 위한 마음의 습관 아이가 'DOC와 춤을' 노래하는 것 듣고 쓴 칼럼. 그나저나 김대중 후보의 'DJ와 춤을' 뮤직비디오 찾아보다가 김종필, 박태준도 나와서 깜놀. 김대중이 집권하기 위해선 그 정도로 상상치 못할 '대연정'이 필요했던 것. 언젠가부터 초등학생인 아이가 ‘DOC와 춤을’이란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십수년 전의 노래다. 어쩐 일인가 살펴보니 학교에서 이 노래에 맞춰 체조를 한 모양이다. 1990년대 그룹인 DJ DOC의 경쾌하고 흥겨운 멜로디가 요즘 초등학생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무심코 노래를 듣다 가사를 깨닫고 멍해졌다. 몇 구절 인용해보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 더보기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게 좋아 좀 기괴한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상을 받은 올해 아카데미가 '스포트라이트'와 '레버넌트'가 상 받은 지난해보단 재밌었던 것 같다. 워런 비티가 더듬거리며 봉투를 만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티는 또 다른 쪽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봉투를 한 번 더 살펴봤는데, 그때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 순간 올해 80대가 된 비티의 총기를 염려했을 것이다. 지난주 아카데미 시상식은 89회 역사상 가장 황당한 촌극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직전 시상된 여우주연상(의 에마 스톤) 봉투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제작진이.. 더보기
성룡과 블랙리스트 한때 영화 담당이었던 본사 베이징 특파원의 칼럼에 영감 받아 씀. 10년을 넘게 썼지만 ‘청룽’(成龍)이란 표기는 여전히 낯설다. 우리에게 청룽은 언제나 ‘성룡’이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조금 앞 세대인 유하 감독의 속 청춘들은 비장한 리샤오룽의 시대에서 코믹한 청룽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성장했다. 아마 그 시대 청룽의 대표작은 이었을 것이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무술 동작은 영화 속 적과 관객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내게 청룽의 대표작은 다. 이 영화에서 청룽은 마약왕을 잡으려는 홍콩 경찰이었다. 가끔 실수를 하고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무리한 수사도 벌이지만, 그래도 청룽은 좋은 경찰이었다. 악을 응징하겠다는 정의감, 약자를 돕겠다는 의협심, 맡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승진이나 .. 더보기
사이다는 없다 '우회도로'란 문패를 걸고 쓴 첫 칼럼. '우회도로'란 문화의 속성을 은유한다. 첫회부터 제목과 비슷한 소재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 MBC .. 더보기
전인권과 지미 헨드릭스 국가 연주도 감동적일 수 있을까. 어떤 음악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인권의 공연은 11·19 촛불집회의 하이라이트였다. 그가 부른 노래의 가사들을 살펴보면 이날의 선곡이 매우 정교하게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첫 곡 ‘상록수’는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가사로 끝난다. 이어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에는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날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에 모인 100만 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였다. 세번째 곡이 ‘애국가’였다. 그간 애국가는 보수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부정하려 해도 애국가에는 보수가 강조하는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날 대담하게 애국가.. 더보기
대통령이 악당이라면? 칼럼. 한국도 그렇지만 대통령이 악당인 영화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늘은 대담한 상상을 하고 싶다. 한국영화에서 대통령이 악당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의 풍경 속에서 경제권력의 정점인 재벌은 이미 강력한 악의 축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은 그 대표적 사례다. 에 등장하는 젊은 재벌 2세 조태오는 천하의 악당이다. 마약을 하고, 술자리에서 기괴한 풍경을 연출하고, 체불 임금을 달라는 노동자를 두드려 패게 하고, 살인을 사주하고, 범죄 증거를 인멸한다. 전국 1300만명의 관객이 정의로운 형사에게 응징당하는 젊은 재벌을 보며 환호했다. 최근 개봉한 에서도 만악의 끝에는 재벌이 있다. 이른바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거대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인 ‘여사님’을 .. 더보기
지금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 역시 때늦은 업데이트.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산시와 부산영화제의 갈등이 봉합됐다. 영화계 내 일부 강경세력은 여전히 불만을 표한다. 이후 전개 양상을 두고볼 일이다. 은 영화사에 남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거칠고 엉성하고 자기과시적이다. 영화의 목적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함인지, 큰 차원에서의 국가 개혁을 위함인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 감독의 말마따나 “어쭙잖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작은 이었다. 20년 역사를 지닌 아시아 최고의 영화축제, 부산을 넘어선 한국문화계의 소중한 자산, 세계의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아시아 영화의 창구, 무엇보다 세계의 그 어느 영화제도 넘볼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가진 행사가 좌초 위기를 맞은 건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더보기
디캐(카)프리오의 길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는 디캐(카)프리오 덕분에 이런저런 쓸 거리가 많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례 없이 정치·사회 이슈가 넘쳤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촉발된 논란은 흑인 사회자의 아시아인 비하 농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성추행, 인종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역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 해야겠다. 디캐프리오는 22년의 기다림, 4번의 수상 실패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아카데미의 역사를 살피면 디캐프리오보다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알 파치노는 8번의 후보 지명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피터 오툴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8번 올랐으.. 더보기
사회 없는 예술은 가능한가 휴가라고 칼럼 차례 바꿔달랄 수도 없고, 미리 써놓고 갈 수도 없고. 때로 예술은 썩은 연못에 피어난 연꽃처럼 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예술의 감동은 삿된 세상에 찌든 영육을 고양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결한 연꽃조차 썩어들어가는 진흙 속에서 양분을 퍼올리고 있으니, 예술도 다를 바 없다. 예술은 속세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이를 모르는 예술가는 무지하거나 어리석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감독과 대표의 동반 사퇴를 불러온 서울시향 사태의 발단은 박현정 전 대표의 폭압적 경영방식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나왔다시피 박 전 대표는 “방만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았고, 박 전 대표 취임 2년 만에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 절반이 퇴사했다.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 여.. 더보기
가디언의 김영삼 오비추어리 (아마도) 오랜만에 가디언 오비추어리에 한국인이 올라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가디언 오비추어리는 냉정하고 정확하기로 정평났다. 오랜만에 모르는거 건너뛰면서 대충 번역해봤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시류에 휩쓸린거 같다. 원문은 여기. 대담한 양 김씨(이 성은 한반도에서 가장 흔하다)는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남한을 지배한 군부 독재자에 맞선 투쟁에 앞장섰다. 더 유명한 김대중은 북한 지도자 김정일과의 첫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연 뒤인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을 건국한 독재자 김일성이 갑자기 죽지 않았다면, 그 상은 87세로 사망한 김영삼에게 돌아갔을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칭하는바를 따르자면, YS는 DJ같은 국제적 유명세는 없었지만 1993년 대통령에 선출됐다. 두 김씨.. 더보기
조성진의 음악은 조성진의 것 며칠간 집에 와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음반을 들었다. 전주곡이 좋았고, 소나타는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칼럼을 썼다. 조성진의 제17회 쇼팽 피아노콩쿠르 우승 실황 음반을 들었다. 24곡의 전주곡을 차례로 연주한 뒤 녹턴, 소나타, 폴로네즈 등을 조금씩 들려줬다. 콩쿠르는 세계의 젊은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짧은 시간에 실력을 뽐내는 대회다. 대회 특성상 열정적이고 다소 과시적인 연주가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다. 예상과 달랐다. 순진한 표정의 21세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차갑고 절제된 연주를 들려줬다. 조성진의 연주는 차분했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초도 발매된 음반 5만장은 1주일 만에 매진됐다. 발매 당일에는 새벽부터 음반 매장에 줄을 선 이들도 있었다. 통상 클래식 음반은.. 더보기
세계의 문학과 대학가요제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쓰는 칼럼은 날짜를 선택할 수 없기에 더 힘들다. 언론 속성상 '시의성'이란 것이 중요한데,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쓸 날짜가 아니고 쓸 날짜가 다가오면 이렇다할 소재가 없게 마련이다. 이번 칼럼의 소재도 '고종석의 엠마 왓슨 편지 사태'로 시작해 '김훈의 라면 냄비 사은품 사태'로 넘어갔다가 결국 가장 최신의 사건인 '세계의 문학 발행 중단 사태'를 썼다. 모든 오래된 것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남긴다. 추억에 취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이 시대의 특징이다.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이 2015년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을 중단한다. 이 잡지를 발행해온 민음사는 ‘폐간’이란 말을 쓰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폐간한 모든 잡지는 일단 ‘발행 중단’한다. 수많은 잡지들이 발간과 폐간을 .. 더보기
불안과 호기심 '빨래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썼다. '불안과 호기심'이라고 붙여준 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느 꿉꿉했던 날의 일이다. 한밤에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는데 아파트 아랫집 주민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랫집 다용도실 쪽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했다. 당장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세탁기의 전원을 꺼야했다. 한창 하던 빨래가 문제였다. 세탁기가 ‘헹굼’ 상태였기에 빨래는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빨래를 꺼내 욕실로 옮긴 뒤 일일이 헹궜다. 다 헹군 다음엔 있는 힘을 다해 빨래를 짜 건조대에 널었다. 다 짜고 보니 손바닥이 까져 있었다. 탈수기를 썼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물기를 짜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퇴근 후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 더보기
'우국'과 '인사이드 아웃' 이렇게 최근 접한 소설, 영화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한 차례 지나감. 싫지만 재밌는 작품이 있다. 신경숙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 작품 ‘우국’이 그렇다. ‘우국’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가 1961년 발표한 단편이다. 이 작품의 절반은 섹스 묘사고 나머지 절반은 죽음 묘사인데, 이렇게 자극적이면서 심오한 소재를 솜씨 있게 다룬다면 작품에 대한 호오와 상관 없이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섹스의 결과로 태어나고 또 언젠가 죽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마치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듯 혹은 영원히 죽지 않을 듯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소설가는 그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린다. 1936년 2월26일 천황 중심의 강력한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가 ‘우국’의 배경.. 더보기
왕좌의 게임과 메르스, 새로운 중세의 시작 정기적으로 쓸 차례가 다가오는 칼럼의 문제점은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는데 있다. 시의성을 중시하는 언론 속성 상, 쓰고 싶은 이슈가 있으면 내 차례가 아니고 내 차례가 오면 쓸만한 이슈가 지나간 상태일 때가 많다. 그래서 칼럼을 쓸 시기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는 일정 수준 운에 달려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 다섯 번째 시즌이 종영한 과 메르스를 엮어보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중이었는데, 마감 직전 신경숙 표절건이 터져서 조금 고민했다. 이슈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받겠지만, 차분하게 세계관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데 좀 더 끌리는 편이라 원안을 고수했다. 덧) 그리고 지면에서의 제목은 '중세로 돌아간 한국'으로 돼 있는데, 내 생각은 '세계는.. 더보기
창비와 박근혜, 훈계와 사과 박근혜 대통령과 출판사 창비는 한국 사회에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둘의 행동양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건 서로에게 모욕일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둘은 비슷하니까. 둘은 모두 사과해야 할 때 훈계한다. 사과의 정도에 따라 죄를 더 캐물을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되려 들려오는 훈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메르스가 한참 퍼져 통제가 어려워진 뒤에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고 부산했다. 동대문 시장 상인, 초등학생, 의사를 만나 연출된 것이 티나는 사진을 찍었다. '메르스 어떻게 하냐'는 질문엔 "손 깨끗이 씻으라"고 답했다.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러 사과를 받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잘한 것은 없지만, 민간 병원장이 대통령.. 더보기
요괴워치가 가르쳐준 것 몇 달 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뻥튀기해 칼럼으로 재활용.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인기 있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그걸 운이나 마케팅이나 알 수 없는 유행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나태하다.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해 완구업계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이날을 위해 대량 생산체제를 가동시켰다가 악성재고로 남는 장난감이 있는가 하면, 부모들이 마트 개장 시간에 맞춰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장난감도 있다. 어린이들은 또래 집단의 취향에 민감하고 싫증을 잘 내기에, 장난감도 유행이 빠르다. 몇 년 전에는 덴마크 블록회사 레고의 ‘닌자고’ 시리즈가 파천황의 인기를 누리더니, 국산 애니메이션인 자동차 변신 로봇 ‘또봇’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의 엘사와 의 공룡 로봇들이 여아와 남아의 시선을 각각 사로잡았다. .. 더보기
유체이탈 화법에 대해 한 영화배우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옛 출연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 배우가 겸연쩍은 표정을 짓자, 동료 출연자들은 놀리듯 웃는다. 제작진은 그 영화의 자료 화면을 보여주며 ‘전설의 영화’라고 조롱한다. 혹자는 이런 말에서 ‘예능감’을 느낀다지만, 이런 행동은 차라리 ‘무례’다.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 웃음을 지었을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그 영화의 관계자들이 봤다면 인상을 펴지 못했을 듯하다. 영화는 대규모 공동작업의 결과다. 수십~수백 명의 주·조연,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고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스태프도 그만큼 많다. 투자자, 기획자, 배급관계자, 극장주, 마케터들도 영화의 성공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다. 그런데 딴 사람도 아니라 영화의 간판.. 더보기
우석훈, "2017 대선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 난 2017 대선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으로 보지 않지만, 우석훈의 신작은 역시 술술 읽힌다. 는 전반부엔 개인적 감상, 타령이 많아 보여 읽기가 좀 힘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재미가 있었다. 특히 제1야당의 자중지란 대목이 그랬다.(싸움구경, 불구경은 원래 재밌는 법) "정당이 튼튼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동의한다. 경제학자 우석훈(47)은 지난해 10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치연구원 부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3년 이후 10여년만의 출근이다. 두 아들을 돌보던 ‘전업 아빠’는 출근하면서 10~20대 자신의 무의식을 지배했던 ‘형가의 노래’를 떠올렸다. 형가는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해 그 자리에서 죽은 자객이다. “바람은 스산한데 역수물은 차구나 /장부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더보기
어느 판사의 품격 다른 주제를 생각하다가 마감하는 날 오전 급히 바꿨다. 원래 쓰려고 했던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더 정리해 꼭 쓰고 싶다. 아이돌도 사람이다. 팬들도 아이돌이 연애하고, 방귀 뀌고, 잘 때 이 간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예전의 팬들은 아이돌의 연애 사실이 밝혀지면 ‘팬질’을 그만두기도 했다. 아이돌이 “사랑해”라고 노래할 때, 그건 노래를 듣는 모든 팬을 위한 메시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위한 연인이 된 순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은 부서진다. 어떤 직업군에는 그에 기대되는 환상이 있다.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교육에 헌신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진 밑에 성적 암시가 담긴 글을 남긴 예비 교사에 대해 대중은 분노했다. 대중의 사랑에 기대어 사는 연예인은 모든 사.. 더보기
모험은 무엇이든 좋다 도합 8시간에 이르는 3부작, 9시간이 넘는 3부작을 모두 본 관객들은 아마 1시간 이상 이어지는 치열한 전투 장면, 반지가 상징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 탐욕에 병든 잔인한 용 스마우그, 엘프들의 아름다운 외모 등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내겐 험난한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호빗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피터 잭슨 감독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듯한 이 결말부에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호빗족 빌보 배긴스는 평화로운 샤이어 마을에서 자족하며 살아간다. 푸른 초원 위 아늑한 마을에는 장난끼 있지만 온순한 종족이 모여 산다. 그러나 빌보가 마법사 간달프와 난쟁이족의 모험에 본의 아니게 휘말리면서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다. 뜻밖의 여정을 떠난 빌보는 수차례 죽을 고비를 .. 더보기
아빠 김근태, 딸 김병민 기자 생활 내내 문화부 부근에 주로 있어서 정치인들과는 인연이 없지만, 고 김근태 의원과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2003년 가을 수습 기자 시절, 편집국 내 각 부서를 견학하다가 정치부에 들렀을 때였다. 정치부 선배는 10여명의 수습 기자들과 김 의원의 만남을 주선했다. 수습 기자들은 나란히 앉아 각자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문제는 자리 때문에 어쩌다 내가 첫 질문자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난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비슷한 이력을 걸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은 반면, 김근태 의원은 별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인터뷰이와 만나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나랑 싸우자"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안다. 이 질문은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이 생각.. 더보기
도서정가제보다 중요한 것 니체의 , 칸트의 같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인터넷 서점들은 하루 종일 과부하 상태더니, 저녁 무렵부턴 아예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접속자가 갑자기 증가해 서버가 다운된 모양이었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날인 20일의 풍경이었다. 매일이 이렇다면 저자, 출판사, 서점이 모두 콧노래를 부르겠지만, 이런 소동도 이날이 마지막이다. 유행 지난 옷가지를 팔아치울 때나 쓰던 ‘창고정리’ ‘폭탄세일’이란 말을 책 사면서 들을 줄이야. 이 소동 속에 살 사람도 사고 안 살 사람도 샀다. 며칠 뒤 독자에게 배송될 은 아마도 책장에 고이 모셔진 채 위풍당당함을 뽐내지 않을까. “그 책 언제 읽을 거냐”고 묻지는 말자. “읽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 더보기
마을은 뜨는데 주민은 떠난다, 젠트리피케이션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골목’이란 이름의 엘피바를 운영하는 김진아씨(39)는 낮시간의 동네 풍경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부동산업자들이 사모님들 모시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언론에선 연일 ‘마지막 노른자위 땅’ 같은 기사를 내고, 그러면 임대료는 또 올라요.” 골목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니 아직 시간은 남았다. 김씨는 “한 번 정도는 더 재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은 장담하기 어렵다”며 “앞집에 세들어 살던 노부부도 얼마 전 어딘가로 이사간 것 같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서구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활발히 벌어지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홍익대 부근, 삼청동, 가로수길에 이어 최근엔 홍대 인근의 합정동과 상수동, 서촌,.. 더보기
안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것, 부산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는 안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 더보기
보비 샌즈와 김영오 (2008)는 (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맥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있던 I.. 더보기
박근혜가 누구예요 **신문 시스템상 취재 기자는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이 칼럼을 쓰면서는 마음 속으로 두 가지 정도의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그 중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제목을 편집자가 정확히 뽑아주셨다. 5월 8일 밤, KBS를 항의방문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박민규 기자 세월호 유족들에겐 청와대로 가지 않을 수차례 기회가 있었다. 유족들의 거친 항의는 방영하지 않고, 그들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인자한 얼굴만 방영하는 공영방송의 행태에 분노한 유족들은 KBS 간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처음엔 안산 합동분향소에서였다. 그러나 책임지고 사과 혹은 해명할 KBS 관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족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직접 한밤의 여의도로 향했다. 이때라도 KBS의 책임있는 누군가가 모습을 보였다면 유족들은 수긍하고 뒤.. 더보기
박지성의 무릎 축구선수 박지성이 5월 14일 은퇴를 발표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축구를 시작한 지 24년만의 일이다. 지금 그의 나이는 33세. 박지성이 전성기를 보냈던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을 살펴봐도 그의 은퇴가 이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가 유력한 라이언 긱스는 박지성보다 8살 많고, 프랭크 램퍼드는 3살, 스티븐 제라드는 박지성보다 1살 많다. 특히 램퍼드와 제라드는 박지성이 마지막 한 해를 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리그보다 훨씬 격렬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도 주전이고, 다가오는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뽑혔다. 박지성은 은퇴 이유를 '무릎'이라고 꼽았다. 나카타 히데토시처럼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은퇴하는 대신,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 더보기
슬픔의 100가지 방식 (이 프로그램을 맘놓고 볼 수 있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세월호 사고 전 에서 '끝사랑'은 가장 뜨거운 코너였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 코너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의 풍상을 겪은 나이에 새 사랑을 시작하는 두 커플을 비교해 웃음을 선사한다. 점잖은 커플(권재관, 박소라)은 한국 사회가 중년에게 통상 기대하는 그러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둘은 데이트를 하면서도 함께 사진을 찍거나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조차 남들 볼까봐 부끄러워 한다. 반면 닭살스러운 커플(정태호, 김영희)은 온갖 시끌벅적한 연애 행각을 벌인다. 가장 뜨거운 연애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조차 하지 않을법한 그런 행동들이다. 정태호는 점잖은 커플의 밋밋하기 짝이 없는 연애를 보며 늘 이렇게 말한다. "저거 사랑.. 더보기
함께 울어야 할 시간 눈물을 머금고 글을 쓴다. 뉴스의 최전선에 있는 처지라 뉴스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처지가 원망스럽다. 이렇게 심약해서 무슨 기자냐고 자책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간간히 눈물을 훔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위안한다. . 사고 당일 아침까지도 기자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전해졌지만 곧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에 접어들어 정부가 구조자의 수를 정정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전원 구조, 368명 구조, 164명 구조…. 이날 서울에 가득했던 미세먼지같은 우울, 슬픔, 탄식이 기자들의 얼굴에 스며들었다. 사회부로 전입온 뒤 여러 건의 죽음을 접했다.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사고의 대학생들, 송파의 세 모녀에 이어, 여객선 세월호의 고교생들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