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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말 하는 아이 아이가 말을 시작했다. 얼마전까진 내가 말을 하면 아이는 그 말에 해당하는 그림 혹은 사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식이었다. 동물이 있는 그림책을 보면서 "사자 어딨지?" 하고 물으면 아이는 사자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런데 약 열흘 전부터 아이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사자"라고 발음한다. 연령을 고려하면 빠른 편은 아니다. 여자 아이, 그리고 형제 자매가 있는 아이가 말을 빨리 배운다고 한다. 게다가 정확한 발음도 아니다. 아이가 지시하는 대상이 '사자'라는 것을 알고 들어야만 식별할 수 있는 발음이다. 그러나 열흘이라는 시간을 고려하면 대단한 속도다. 그 많은 단어들을 다 알면서도 발음하지 않다가 한꺼번에 내놓는가 싶을 정도다. 사자, 기린, 코끼리, 거북이, 토끼 등 그림책에서 자주 보던 동물.. 더보기
아기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동요들 아기를 재우기 위해 어두운 방에서 이런저런 동요를 조용히 부르다 보면, 그 중에서도 가사와 멜로디가 특히 아름다운 곡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또 노래라는 것은 몸에 참으로 깊숙히 각인된다는 점을 느낀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불러본 적이 없는데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바로 입에서 나오는 그 노래들. 태교 시절, 아내의 배에다 대고 불러준 노래는 '반달'이었다. 제목 보다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되는 가사로 더 널리 알려진 곡이다. 1924년에 발표된, 한국 창작 동요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고 방금 포털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사가 좀 생경하다. '쪽배'가 뭔지, '계수나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으며, 돛대니 삿대니 하는 단어들.. 더보기
아이의 특별한 하루 오늘은 우리 아이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아기가 본격적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세상에 발을 디뎠다. 아내는 2년 반의 휴직을 마치고 3월부터 복직을 한다. 오늘은 복직을 위한 1주일간의 연수 교육 중 첫 날이었다. 교육을 위해 아내는 7시 30분쯤 집을 나서야 했다. 내가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엔 금요일까지지만, 3월 이후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건 온전히 내몫이 된다. 아이는 지난해 가을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적응을 위해서였다. 1년 반 동안 하루 종일 아이를 봐온 아내에겐 한 숨을 돌릴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는 여전히 집에 머물렀던지라, 아이는 9시30분쯤 어린이집에 가 4시쯤 돌아왔다. 3월부터는 다르다. 아이는 9시도 안돼 어린이집에 가서 5~6시쯤 .. 더보기
필름, LP, 아날로그의 끝자락 로모 카메라로 찍은 정동길/ by 잘 아는 분 필름 회사 이스트만 코닥이 파산을 신청했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만든 회사가 코닥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영'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경제경영서에 나온다. 나는 지금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무려 18년전인 1994년 무렵.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LP는 멸종되고 있었다. 가요 음반이 100만장, 200만장씩 팔리는 시절이었지만, 대세는 CD였다. 갓 20대에 접어든 내가 그리 이르게 향수를 느낄 줄이야. LP 구경은 내 고교시절을 즐겁게해준 몇 안되는 놀이였다. 어쩌다 시간이 있는 주말이면 나는 다운타운의 대형 레코드 가게로 향했다. 팝, 록, 프로그레시브,.. 더보기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에 대해 가수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가 뒤늦게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임재범은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공연 중 나치 군복 상의와 모자를 착용하고 나왔다. 임재범은 나치식 거수경레를 한 뒤 “하일 프리덤”, “히틀러 이즈 데드” 라고 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비평의 대상”이라며 “온갖 충격에 익숙한 대중을 ‘미적으로’ 도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작곡가 김형석은 다시 “아무 계산없이 그 무대에 어울리는 소재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 것 뿐”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되받았다. 소속사는 “카리스마 있는 록 무대를 꾸미기 위한 일종의 연출”이라며 “록의 정신이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기.. 더보기
이사, 뿌리를 옮기는 삶 처음 잠실에 살기 시작한 건 4년전이다. 태어났을 때는 한강변의 어느 아파트에, 유치원 무렵엔 반포의 어느 아파트에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대학과 대학원, 사회 초년 시절엔 신촌, 이대, 홍대 부근을 맴돌았다. 어느덧 결혼을 할 시기가 됐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신접 살림은 잠실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차렸다. 아기가 생기면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무채색 공간을 조금씩 점유한다. 결혼을 하기 보름전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아 휑한 느낌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이 집으로 돌아왔다. 총각 시절의 로망이었던 아내와 함께 큰 화면으로 디비디 보기도 종종 했다. 그리고 아기를 가졌다. 어떤 아내들은 출산 전후에 친정에서 조리를 한다.. 더보기
연에인의 사생활 '공인'(公人)의 뜻이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난 연예인이 공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타의 모범이 되는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없다. 법을 어겨서는 안되겠지만, 법을 어겼을 때 여느 사람보다 가중처벌받을 이유도 없다. 일부 연예인의 음주운전이나 병역회피 등에 대한 비난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집권 여당 대표가 서류상으로까지 분명한 병역 기피자인데, 그는 MC몽이나 싸이보다 많은 비난을 받았는가. 집권 여당 대표야말로 분명한 공인인데.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떤 연예인은 여느 사람들이 평생 뼈가 삭도록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순식간에 벌고 그만큼의 사랑도 받는다. 그 돈과 인기에는 연예인에 대한 대중(그리고 연예 매체)의 늑대같은 호기심을 견뎌내는.. 더보기
사람과 사람의 일 교환학생 시절의 일이니 벌써 10여년 전이다. 난 대학원생 및 외국인학생 전용 기숙사에 있었는데,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숙사 책임자가 몇 가지 당부사항을 말해주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학생들이 가끔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건 마찬가지인 듯한데, 설사 그렇다 해도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사용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토해놓지 말란 얘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For the dignity of a custodian" 말하자면 "관리인(환경미화원)의 존엄을 위해"란 뜻이다. 난 충격을 받았다. 공공장소를 더럽게 사용해선 안된다는 유의 '공중도덕'이야 한국에서도 '바른생활' 시절부터 누누히 가르치는 것이지만, 공중도덕이란 것이 그 뒷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에도 연관돼 있다고는 결코 생각.. 더보기
로마의 휴일2 이날은 혼자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티볼리 같은 외곽지로 나가볼 생각도 했으나, 겨울이라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경우 로마 시내에서의 첫 행선지는 대개 콜로세오(라틴어로는 콜로세움, 현재 이탈리아어 표기는 콜로세오)가 될 것이다. 위로부터 콜로세오, 코스탄티노 개선문, 그 이후 포로 로마노의 고대 건물들, 코스탄티노 개선문은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인 콘스탄티노스가 정적을 물리치고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 문에 반해 프랑스로 뜯어가려 했으나 기술적인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파리에 유사한 형태의 개선문을 세웠다고 한다. 이런 로마식의 개선문은 세계 도처에 '개선문'이라 이름붙은 문들의 원형이 됐다. 심지어 평양에도 좀 더 모.. 더보기
로마의 휴일1 5박6일 출장 기간 중 4일이 휴일. 말그대로 로마에서 보낸 휴일. 기가 막힌 일정에 투덜대며 떠난 길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볼거리가 많았다. 일정 중 짬을 내 로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하루는 가이드를 따라 바티칸 투어, 다음날은 홀로 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위로부터 바티칸 박물관 안뜰, 멀리 보이는 성베드로 성당의 돔, 이름 모를 대형 고대 조각상. 바티칸 시민은 교황과 전세계 추기경으로 구성됐다. 그러므로 한국의 추기경은 한국과 바티칸의 이중국적이다. 출산율은 이론적으로 0%. 이번 로마행의 최대 수확인 라오콘 군상. 라오콘은 트로이 사제였다. 그리스인들이 목마를 놓고 사라지자, 트로이인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기뻐하며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으려 했다. 라오콘은 목마를 의심했고, 그 안에 그리스 .. 더보기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교통약자의 경우 닥쳐보지 않으면 몰라서 인간은 아둔하다. 전세를 살아본 적이 없으니 전세값 오른다는 아우성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소 돼지를 먹기만 했지 동물의 입장이란건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덮어놓고 생매장하고 보는거다. 권력 없는 인간이 역지사지 못해도 가끔 민페를 주는 마당에, 다른 사람, 동물, 식물 생각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인간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니 살기가 힘겹다. 예전에 장애인들끼리의 좌담회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동권 이야기를 하다가 지하철 동대문운동장 역이 화제로 올랐다. 난 그 역에서 5호선, 2호선, 4호선 등을 갈아타면서도 환승 구간이 좀 길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장애인 입장에서는 그 역에서 환승하는데 30분이 걸린다는 얘기였다. 깜짝 놀랐고, 이후로 그 역을 .. 더보기
사라오름을 다녀오다 얼마전 사진으로 먼저 올린 제주도 여행기. 사라오름을 중점으로 썼다. 처음엔 '사라오름 등정기'라고 제목을 붙여 올렸다가 민망해서 얼른 '사라오름 다녀오다'로 바꾸어 올렸다. 날씨가 조울증이었다. 서귀포의 숙소를 나설 때는 화창하더니 성판악 휴게소 근방에 도달하자 먹구름이 끼었다. 게다가 몹시 추웠다. 결국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은 겨울등반이 됐다. 뒷동산을 닮은 포근한 오름을 생각했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은 지난달 1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지만 공개되지 않은 곳이 많다. 오름은 사토(沙土)라 밟으면 유실되기 쉽기 때문이다. 외지인들은 올레길을 많이 찾지만, 제주도민들은 오름을 오른다. 각 학교와 직장에 오름 동호회가 생겨나 경쟁적으로 오름을 오르.. 더보기
11월, 제주. 11월 24, 25일.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의 이런저런 관광지들에 갔다. 첫 날은 주최측이 제시한 코스대로, 둘째 날은 주최측의 제시안 또는 자유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난 자유 여행을 택해 오전엔 11월 초 열었다는 사라오름, 오후엔 한라수목원에 다녀왔다. 그 사이엔 (해당 점포 바리스타의 말에 따르면) 제주 3대 드립 커피 집 중 하나라는 '신비의 사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산굼부리의 억새밭이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웠다. 이날부터 서울도 추웠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억새가 쉬지 않게 쉬쉬 소리를 냈다.  절물휴양림의 풍경. 춥지 않은 날 다시 와서 천천히 거닐고 싶은 곳이다. 5시간동안 걷는 코스도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도 없이. 폐목을 깎아 만든 조각상이 있다. 하늘엔 난데없는 까.. 더보기
비틀스와 애플 난 비틀스가 끝내 디지털 음원을 팔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기사의 표현대로 어떻게든 가질 사람은 다 가졌겠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팔지 않기를 바랐다. 합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냥 비틀스는 공식적으로는 엘피나 CD로만 남아있기를 바랐다. 2010년 11월 16일은 음악 산업에서 디지털이 아날로그에 최종승리를 선언한 날로 기억될 듯하다. 현지시간으로 이날부터 비틀스의 디지털 음원이 애플의 아이튠스를 통해 판매됐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애플이 판매하는 비틀스의 음원은 리마스터 작업을 한 13장의 스튜디오 음반과 편집 음반 , 히트곡 모음집 와 등이다. 더블 앨범은 19.99 달러, 1장짜리 앨범은 12.99 달러다. 개별 곡은 1.29달러로 이는 아이튠스에서 판매되는 노래 중 최고 가격이다. 비.. 더보기
연필, 샤프. 연필이 좋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에 샤프로 줄을 긋다가 느꼈다. 샤프심은 종이와 마찰했다. 까끌까끌. 부드럽게 줄이 그어지지 않았다. 책이 마뜩치않게 내준 좁은 길 위로 샤프가 아슬아슬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책의 매끄러운 종이에는 상처가 나고, 샤프는 원치않는 경범죄를 저지른듯한 느낌. 연필로 줄을 그으면 부드럽다. 종이의 표면을 거침없이, 매끄럽게 흐른다. 연필을 깎은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가 더 좋다. 끝이 뭉툭해진 연필이 종이 위를 활강하듯 미끄러져 간다. 작은 연필깎기로 연필을 깎는다. 가늘고 곱게 갈린 연필 찌꺼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와 연필, 나와 나무, 나와 자연이 손을 마주치는 느낌이다. (며칠 뒤 이어서 적음) 오늘은 옆 자리의 선배가 파베르 카스텔 샤프를 자랑했.. 더보기
유모차 끌고 음악 페스티벌 가기 지산 밸리니, 펜타포트니, GMF니 하는 음악 페스티벌에 간 지 오래됐다. 공연을 보더라도 실내에서 앉아서 보는 것이 좋지, 서서 보기는 좀 힘들다. 물리적인 부분보다는 앉아서 듣는 종류의 음악에 요즘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GMF도 별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가 강력하게 가길 원했다. 동네에서 열리는데다가, 날씨도 좋고, 유모차를 끌고 다녀올 수도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음악 담당 선배에게 얘기했더니 "가는 대신 기사를 쓰라"는 거래를 역으로 제안해왔다. 아내와 선배 사이에 낀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온다고?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인 1969년의 우드스탁을 아는 이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우드스탁은 .. 더보기
고양이를 보고 나는 쓰네 늦은 퇴근길.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길고양이 시체를 보았다. 가죽만 벗겨놓은 듯 납작하게 엎드린 그 시체. 횡단보도의 무늬를 닮은 검고 흰 얼룩. 얼마나 많은 차들이 그 위를 지났을까. 첫번째 운전자는 타이어에 짓눌린 생명의 꿈틀거림을 느꼈을까. 두번째 운전자는 작고 곧은 척추가 우그러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세번째 운전자의 손에는 심장의 마지막 박동이 전해졌을까. 네번째 운전자는 작은 요철을 지났을까. 길고양이 영혼의 무게는 얼마일까. 그 무게는 인간의 영혼보다 가벼울까. 60억의 인간, 그 60억배수 생명체 영혼의 무게는 모두 얼마일까. 누구의 영혼은 다른 누구의 영혼보다 크고 무거울까. 나는 기억하고 생각하고 쓴다. 블로그를 통해 길고양이의 영혼을 불러세운다. 생명의 무게에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 더보기
시네마정동 영업종료에 부쳐 시네마정동, 스타식스 정동으로 더 익숙한 그 극장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윤성호 감독이 먼저 알고 있었다. 난 이 극장이 자리하고 있는 건물에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도 이 소식을 까맣게 몰랐다. 윤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에 "그간 중앙시네마나 씨네코아가 문을 닫는다고 하면 조금 의무적인 자세로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정동은 다르다. 1년에 극장마실 한번 가던 정도인 내가 그 심야패키지에 끌려 개봉영화 보는 버릇을 들이게 한 곳"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내게 시네마정동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다며 극장 관계자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시네마정동은 윤 감독 뿐 아니라 내게도 추억이 있는 곳이다. 경향신문에 입사하기도 전인 2000년대 초반쯤, 난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와 시네.. 더보기
야구라는 이름의 망령 나는 망령에 사로잡혔다. 그 망령의 이름은 야구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베어스의 올해 야구가 끝났다. 플레이오프 5차전, 11회말 2사 만루 2-2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구원투수의 심경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심장마저 쥐어뜯는 상황, 임태훈의 머리와 가슴엔 얼마나 많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을까. 느리고 불규칙한 바운드의 땅볼을 향해 전력질주한 뒤 정확하게 잡아 송구해야 하는 유격수의 손에는 경련이 일어났을까. 난 그렇게 막중한 책임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는 정도. 그런 것 아무렇지도 않다. 난 연장전 만루에서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 그토록 크고 중대한 순간을 맞아본 적이 없다. 그 순간을 맞아 결국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을 난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 더보기
여중생 단상 오늘 아침 출근길, 정동길을 걷다가 여중생들의 무리에 섞였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도 나왔던 그 '조그만 교회당'에서 교복을 입은 예원학교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묵묵히 걷는데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중생들이 둘셋씩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는 것, 마치 떨어지면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이나 하늗듯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는 것, 세 명의 경우 서로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었다는 것. 난 중학생 때 다른 이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은 적이 없다. 다른 남학생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셋씩 짝을 지어 꼭 붙어다닌 적도 없다. 여중생들 사이엔 무엇이 있기에. 다른 누군가가 그 셋 사이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기에. 셋은 과연 공평한 감정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