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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라는 이름의 망령 나는 망령에 사로잡혔다. 그 망령의 이름은 야구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베어스의 올해 야구가 끝났다. 플레이오프 5차전, 11회말 2사 만루 2-2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구원투수의 심경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심장마저 쥐어뜯는 상황, 임태훈의 머리와 가슴엔 얼마나 많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을까. 느리고 불규칙한 바운드의 땅볼을 향해 전력질주한 뒤 정확하게 잡아 송구해야 하는 유격수의 손에는 경련이 일어났을까. 난 그렇게 막중한 책임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는 정도. 그런 것 아무렇지도 않다. 난 연장전 만루에서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 그토록 크고 중대한 순간을 맞아본 적이 없다. 그 순간을 맞아 결국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을 난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 더보기
비노슈+키아로스타미=<증명서> 줄리엣 비노쉬, 혹은 쥘리에트 비노슈의 말은 좀 특이하다. 몇 차례 기자회견을 본 적이 있는데 여느 배우와 어법이 다르다. 굉장한 철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횡설수설, 동문서답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허우샤오시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올리비에 아사야스, 미하엘 하네케, 샹탈 애커만, 크지쉬토프 키에스로스키, 그리고 장 뤽 고다르와 작업했던 배우다. 오늘 기자회견에서도 통역이 버버버버벅대는 광경이 목격됐다. 수신기를 끼지 않고 그냥 영어로 들었으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리고 가 좋다. '지그재그 3부작'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2010년이니까. 감독과 여배우의 관계는 미묘하고 중요하다. 마치 연인처럼, 둘은 싸우고 사랑하고 화해하며 인생을 닮은.. 더보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들-1 개막식날 와서 지금까지 4일째. 모레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한다.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영화를 하루에 4편씩 보기에는 힘이 부치는 듯 하기도 하고. 그래도 보려면 보지만 굳이 그렇게 보려고 들지 않는다. 는 '에 대한 반성문'과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폐와 향락과 질투와 모반과 불륜과 골육상쟁이 난무했던 에 대해선 중국 공산당마저 비판한 적이 있다. 아무리 '국책예술가'의 반열에 든 장이머우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 '퇴폐'를 받아들이기엔 중국 사회주의의 도덕성이 지극히 올곧았나보다. 그래도 난 가 이나 보다는 차라리 좋았다. 솔직히 이라크 전 직후 개봉한 을 보고 난 장이머우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는 고전적인 멜로드라마이며, 원숙한 감독의.. 더보기
<대부2>와 아들타령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과 침묵 사이에서, 경향신문과 민주노동당이 토닥거리고 있는 모양이다. 뭐라고 표현하든, 왕조 시대가 아닌바에야 외부인의 눈으로 볼 때 3대 세습이 좀 이상한 건 분명한 사실. 김정은의 핏줄에 어떤 대단한 DNA가 흐르기에, 별다른 검증도 없이 수천만 인민을 이끌 능력을 타고났음을 확신한단 말일까. 최근에 다시 본 에서도 역시 '아들 타령'을 읽었다. 이재용이 못하면 삼성이 망할 뿐이지만, 김정은이 못하면 북한이 망하고 북한 주변 나라도 불편해질 것 아닌가. 아, 삼성이 망하면 한국도 망하는 것 맞나? 핏줄이 무엇이기에 이 난리랍니까. 한국 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미국 사람도 ‘아들 타령’이군요. 정확하게는 이탈리아계 미국 사람이지만요. 7일 디지털 리마스터링판으로.. 더보기
장이머우와 <산사나무 아래> 2000년대 이후 장이머우 감독의 행보는 ‘물량’과 ‘중화’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2002), (2004), (2007) 등 중국의 화려했던 옛 시절을 뽐내는 대작 사극과 초창기의 소박한 리얼리즘 드라마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연출과 함께 장이머우의 경력은 절정에 오른 듯했다. 그러나 장이머우의 행보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았다. 특히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는 당 황실을 배경으로 황제와 황후, 그 자식 간의 암투, 음모, 불륜을 그린 에 대해서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왔다.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는 와 대척점에 놓인 작품이다. 마치 에 대한 반성문이라도 쓰는 느낌이다. 영화는 문화혁명기를 배경으로 출신 성분이 다른 두 젊은 남.. 더보기
‘대부2’ 세상에 ‘믿을 놈’이 핏줄뿐입니까 핏줄이 무엇이기에 이 난리랍니까. 한국 사람만 그런 줄 알았더니 미국 사람도 ‘아들 타령’이군요. 정확하게는 이탈리아계 미국 사람이지만요. 7일 디지털 리마스터링판으로 재개봉하는 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영화 는 너무나 유명해 새삼 언급하기조차 쑥스러운 작품입니다.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속편’으로도 유명하죠. 로버트 드니로가 젊은 시절의 비토 콜레오네 역을, 알 파치노는 그의 아들인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았습니다. 온가족이 시실리 지역 마피아에게 살해당한 뒤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온 9살 소년 비토의 모습에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약한 자를 등쳐먹고 사는 악당이 있게 마련이죠. 이국땅에 살아가는 이탈리아 이민자 사이에도 마피아가 있었습니다. 비토는 마피아를 제거한 뒤 스스로 지역을 .. 더보기
오늘의 영화 연상 아침 출근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극중 톰 크루즈는 특수장갑을 낀 채 허공에 3차원으로 뜬 디스플레이를 이리저리 조작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낸다. 8 년 전 영화를 봤을 때는 무슨 황당한 이미지인가 싶었는데, 그 사이 스마트폰이 나오니 스필버그의 비전이 조만간 현실화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필립 K. 딕의 오랜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스필버그는 영화의 이미지를 자신의 상상력이나 책 속에서만 추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스필버그라는 이름값으로 접근 가능한 미국 기업 혹은 국가의 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최대한 끌어모아,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을 듯하다.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지모프 같은 대가가 그랬듯, 훌륭한 SF작가는 냉정한 과학자와 통찰력있는 예언자의 자질을 두루 갖춰야 한다... 더보기
야구의 계절 내게 가을은 독서, 수확, 단풍의 계절이 아닌 야구의 계절이다. 운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한국의 프로야구팀은 몇 년 째 계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야구보는 즐거움을 더했고, 운이 나쁘게도 그 팀은 몇 년 째 계속 같은 팀에게 져 우승을 하지 못했다. 2007년 야구 시즌이 끝나고 쓴 '영화는 묻는다' 칼럼을 옮겨놓는다. 닉 혼비의 원작 도 읽었고, 패럴리 형제의 영화도 봤다. 둘 다 미덕이 있지만, 아무래도 내겐 축구보다 야구다. (패럴리 형제는 요즘 뭐하나.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좀 뜸하다. Imdb 찾아보니 후반작업중인 영화가 있긴 하던데....) 야구가 좋습니까, 애인이 좋습니까. 한국과 미국에서 야구 시즌이 같은 날 끝났습니다. 한국에선 제가 응원하는 팀이 졌고, 미국에선 이겼습니다. 전 야성적이.. 더보기
조금 특이한 최다니엘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 최다니엘 직접 만나본 최다니엘(24)은 좀 특이했다. 시트콤 의 이지적인 의사, 영화 의 숙맥 펀드매니저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싱글싱글 잘 웃다가도 양보하지 않을 기세로 주장을 내세우는가 하면, 남들은 사용하지 않을 어휘를 거침없이 대화 사이에 넣었다. 대답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통에, 준비한 질문은 거의 소용이 없었다. 안경은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실제로 눈이 나쁜지 묻자 알 없는 안경테에 손을 넣어 빙글빙글 돌렸다. “연기할 때는 안경이 오히려 방해가 돼요. 하지만 대중의 입맛이 그걸(안경) 좋아한다면…”하며 웃었다. 드라마 으로 얼굴을 알린 뒤 시트콤 으로 여성팬의 시선을 일시에 끌어모았다. 유명세를 느끼는지 물었다. “대중이 절 알아주면서 좋은 건 단.. 더보기
유행 지난 감정-무적자 음식이나 옷에만 유행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감정이나 태도는 유행을 탄다. 한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는 예전이면 열정이었겠지만 요즘은 스토킹이다. 는 홍콩영화 (1986)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은 검은 선글라스를 낀 채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쌍권총을 쐈던 저우룬파(周潤發)를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모습이 깊게 각인된 건 영화 속 남자들의 우정, 의리가 당대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김혁(주진모)과 이영춘(송승헌)은 무기 밀매로 부를 쌓고 있다. 김혁은 어머니와 동생 철(김강우)을 북에 남겨두고 떠나온 데 대한 죄책감이 있다. 철은 어머니를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게 만든 형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탈북해 남한까지 들어온다. 부하 조직원 정태민(조한선)의 배신.. 더보기
톨스토이의 여자, 신, 조국 ▲ 톨스토이…앤드류 노먼 윌슨 | 책세상 빼어난 소설가이자 명민한 전기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전기를 남겼다. 츠바이크는 톨스토이를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나병에 걸린 뒤 모든 것을 잃어 영적 고통을 당하는 성경 속 인물 욥에 비유한다. 유서깊은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는 육체가 건강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으며 13명의 자녀를 얻었고 생전 큰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겐 어떤 병도, 파산도, 실연도 닥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한순간 사물 배후의 ‘무(無)’를 통찰했을 뿐이다. 츠바이크가 탁월한 통찰을 통해 길지 않게 남긴 톨스토이 전기를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앤드류 노먼 윌슨은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812.. 더보기
부산영상위원회 떠나는 박광수 위원장 운영위원장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 최근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박광수 감독에 대한 지역 언론의 반응은 그의 동상이라도 세워주겠다는 기세다. 부산영상위의 기틀을 잡고 물러나는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로 각광받던 박 감독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으로 영화행정에 발을 내디딘 뒤 99년 부산영상위 출범과 함께 초대 위원장이 됐다. 부산영상위의 주요기능은 촬영지원 및 영화산업 육성이다. 부산영상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269편의 한국 장편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매년 한국영화의 40%가 부산에서 촬영되는 셈이다. 한국영화에 유독 부산 사람이 많이 나오거나 부산이 촬영 배경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다고 느낀다면, 그건 부산영상위의 활약 덕이다. 이.. 더보기
김태희가 '옆집 여자'가 된다면 김태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인과 소속사, 심지어 대중들도 그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네. 말도 안된다는 원성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김태희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밥줄을 끊을 외모를 지녔습니다. 함부로 그 얼굴에 손을 댔다가는 조물주와 인간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겁니다. 게다가 그는 한국 최고 대학의 졸업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역시 평범합니다. 전 김태희의 외모나 학벌, 이미지가 아닌 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김태희에게는 통상 배우가 가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가지 품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열정, 야심, 질투, 이기심 등입니다. 배우란 어느 모임에서라도 시선을 독차지하지 않으면 못견뎌하는 족속이지만, 김태희는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떠도 아무 불만이 없는.. 더보기
여중생 단상 오늘 아침 출근길, 정동길을 걷다가 여중생들의 무리에 섞였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도 나왔던 그 '조그만 교회당'에서 교복을 입은 예원학교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묵묵히 걷는데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중생들이 둘셋씩 짝을 지어 걷고 있었다는 것, 마치 떨어지면 영영 이별이라고 생각이나 하늗듯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는 것, 세 명의 경우 서로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었다는 것. 난 중학생 때 다른 이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걸은 적이 없다. 다른 남학생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셋씩 짝을 지어 꼭 붙어다닌 적도 없다. 여중생들 사이엔 무엇이 있기에. 다른 누군가가 그 셋 사이에 끼어들면 어떻게 되기에. 셋은 과연 공평한 감정을.. 더보기
영화 ‘그랑프리’ 김태희  김태희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인과 소속사, 심지어 대중들도 그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네. 말도 안된다는 원성이 여기까지 들립니다. 김태희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밥줄을 끊을 외모를 지녔습니다. 함부로 그 얼굴에 손을 댔다가는 조물주와 인간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한국 최고 대학의 졸업장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역시 평범합니다. 전 김태희의 외모나 학벌, 이미지가 아닌 그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김태희에게는 통상 배우가 가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여러 가지 품성이 부족해 보입니다. 열정, 야심, 질투, 이기심 등입니다. 배우란 어느 모임에서라도 시선을 독차지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족속이지만, 김태희는 구석에 조용히 있다가 자.. 더보기
사랑하게 되면 ‘사랑’에만 몰두하세요 사랑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압니까. 2일 개봉하는 는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섞은 영화입니다.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샬린 이와 배우 마이클 세라의 연애 과정은 픽션이고, 샬린 이가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 나눈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샬린 이는 사랑에 대해 물으면서 스스로 사랑에 빠집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샬린 이는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로 시작합니다. 지금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그것이 사랑인 줄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다가 마이클 세라와 만나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합니다.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호의적인 말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고 가벼운 키스를 합니다. 난관은 두 배우가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시작됩니다. 마이클 세라는 개인의 감정과 .. 더보기
<테이킹 우드스탁> 이번 여름에도 여러개의 음악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음악 페스티벌엔 왜 가는 걸까요. 1969년 8월15일부터 3일간 미국 뉴욕주 베델 평원에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고, 50만명의 히피 관객이 모인 이 축제는 공연 수준, 관객의 태도, 묘한 시대 분위기가 어울려 이후 모든 음악 축제의 이데아가 됐습니다. 29일 개봉하는 리안 감독의 은 이 페스티벌의 기획자였던 엘리엇 타이버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엘리엇은 화가를 꿈꾸는 젊은이지만, 부모님이 경영하는 시골 모텔이 파산 직전이라는 소식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했던 록 페스티벌이 주민의 반대로 취소되자, 엘리엇은 페스티벌을 유치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기로.. 더보기
하라 세스코 한 번 태어나 살기도 고통스러운 세상, 일본의 여배우 하라 세스코는 세 번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녀를 이른 은퇴로 내몬 것은 탄생과 부활에 따른 고통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라는 일본과 독일 파시스트들의 친선 대사로 처음 태어납니다. 독일의 영화 감독 아놀드 팽크는 당시 신인급이던 하라 세스코를 주연으로 발탁해 일본·독일 합작 영화 (1937)에 출연시킵니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격찬한 이 영화를 통해 하라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전쟁 시기의 그녀는 주로 군인, 경관의 딸을 연기했습니다. 패기만만했던 젊은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1945년 봄 하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의 연출을 계획했습니다. 잔다르크 이야기의 일본판인 이 영화가 전쟁 막바지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받.. 더보기
<영도다리>, <레퓨지> 이 험하고 슬픈 세상에 새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까. 임신과 출산은 낭만, 감격보다는 당황, 고통의 연속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신보다는 짐승에 가까워집니다. 고상한 음악을 들으며 깔끔한 거실에서 살아가던 부모는 아기의 울음과 똥과 토사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똥을 피하는 건 거기에 몸을 해치는 병균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아기의 똥기저귀를 갈면서 진화의 유구한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셈입니다. 비슷한 시기 개봉하는 전수일 감독의 와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는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그 이후의 선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의 주인공인 19세 소녀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했으며, 출산 직후 아이를 입양기관에 넘깁.. 더보기
원본 없는 패러디에 만족하십니까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까. 패러디는 오리지널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애니메이션 창작의 근본 태도는 패러디였습니다. 늪지대의 녹색 괴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점부터가 왕자, 공주 중심이었던 기존 동화의 구도를 뒤집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저주를 받아 괴물로 변했다는 얘기는 같았지만, 이 공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를 구원하려 노력했습니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개구리 왕자 등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는 다른 성격으로 등장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은 동화뿐 아니라 20세기 대중문화의 최대 유산인 영화도 패러디했습니다. 등 젊은 관객이 금세 눈치챌 수 있는 영화의 장면이 슈렉과 그 친구들에 의해 다시 연출됐습니다. 는 네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입니다. 가정을 꾸린 슈렉과 피.. 더보기
영화 <엽문2> 전쯔단 고수들은 하나 둘씩 강호를 등졌습니다. 누군가는 태평양을 건너 할리우드로 갔고, 누군가는 본토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이제 전쯔단(甄子丹)은 홀로 남은 강호의 고수입니다. 는 리샤오룽의 스승으로 알려진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전편에서 일본군에 맞서다가 부상을 당한 엽문이 종전 이후 홍콩으로 건너와 겪는 일을 그렸습니다. 엽문은 홍콩의 여러 사범들의 텃세에 맞서 도장을 지켜내는 동시, 중국인을 무시하는 영국인 권투 챔피언과의 대결도 준비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술인 가족 출신인 전쯔단은 1980년대부터 배우와 무술지도를 겸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할리우드 영화 의 무술감독으로도 활약했습니다. 정작 그가 관객의 눈에 띄기 시작한 건 200.. 더보기
저 달이 차기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 노동절 전 전주에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하고 슬프고 갑갑한 영화를 봤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들어본 적도 없으셨을 이 영화의 제목은 입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의 분위기는 서정적인 제목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난해 수천명의 구사대와 경찰에 맞서 공장을 점거 투쟁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77일간 싸우다가 결국 공장을 제발로 나왔습니다. 한밤중 공장 옥상에 올라 경계 근무를 서던 노동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저 달이 차기 전에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제작진은 출입이 봉쇄된 공장에 잠입해 가족, 사회, 세계로부터 고립된 노동자들.. 더보기
<블라인드 사이드> 샌드라 불럭 샌드라 불럭(45)은 자신의 사랑을 이루는 대신,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헬리콥터 맘’이 됐습니다. 15일 개봉하는 는 불럭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될겁니다. 이 영화로 불럭은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자마자 상을 탔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는 실화에 바탕합니다. 리앤(불럭)은 미국 남부의 상류층 주부입니다. 리앤은 자신의 두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덩치 큰 흑인학생 마이클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리앤은 그를 자신의 집에 불러들여 숙식을 마련해 줍니다. 급기야 리앤은 마이클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고, 그에게 미식축구를 권합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란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뜻합니다. 리앤은 경기의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마이클.. 더보기
<사요나라 이츠카> ‘생활’ 바깥에는 ‘삶’이 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은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지루한 생활의 굴레를 벗어나면 무언가 근사한 삶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1970년대 방콕을 배경으로 한 (안녕 언젠가)의 주인공 유타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생긴 외모, 좋은 매너를 갖춰 ‘호청년’(好靑年)이라 불리는 유타카는 방콕의 항공사 지점에 발령받아 정숙한 약혼녀를 잠시 떠납니다. 일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유타카는 최고급인 오리엔탈 호텔의 서머싯 몸 스위트에 장기 투숙 중인 매력적인 여성 도우코의 유혹을 받습니다. 둘은 거리낌없이 몸을 섞습니다. 그러나 회사 동료와 약혼녀가 둘의 관계를 눈치챕니다. 유타카와 도우코는 한때의 열정을 잊고 이별합니다. 그리고 세월은 25년 뒤로 흐릅니다. 한국의 감독(이재한)과 투자사(.. 더보기
<시리어스 맨>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모퉁이를 돌았을 때 당신과 부딪치는 것은 대형 트럭일 수도, 일생의 연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얼마나 확정적입니까. 코엔 형제 감독의 신작 의 주인공 래리는 진지하게 살아가려는데, 운명은 그를 장난스럽게 쥐고 흔듭니다. 이 남자가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물리학 교수라는 설정은 그의 처지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듭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내는 래리의 친구와 바람이 났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자식들은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덜 떨어져 보이는 래리의 동생은 형의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얹혀 삽니다. 래리의 종신재직권을 심사하는 동료 교수들에겐 래리를 모함하는 편지가 날아듭니다. 낙제를 받은 한 한국 학생은 래리 몰래 뇌물을 두고간 뒤,.. 더보기
<사랑은 너무 복잡해> 메릴 스트리프 메릴 스트리프는 특별히 잘하는 역이 없는 배우입니다. 모든 역을 다 잘하기 때문이죠. 메릴 스트리프가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질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됩니다. 이번주에는 그가 출연한 가 개봉합니다. 스트리프는 재결합을 원하는 전 남편(알렉 볼드윈), 다정다감한 건축가 애덤(스티브 마틴)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리사 제인 역을 맡았습니다. 연적으로 등장한 볼드윈과 마틴은 며칠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동으로 사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스트리프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작이었던 에서도 요리사 역을 맡아 객석에 앉아있었고요. (경향신문 자료사진) 에밀리 블런트, 앤 헤서웨이, 클레어 데인스, 페넬로페 크루즈. 스트리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젊은 여배우의 명단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스트리프.. 더보기
'인터내셔널' 은행은 악당입니까. 미국 영화는 끝없이 새로운 악당을 창조해왔습니다. 주인공에게 제압당할 상대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대엔 공산주의 스파이가 악당이었습니다. 때론 외계인이 까닭없이 미국만 골라 침략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냉전시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해석하는 평론가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때론 아프리카 군벌이 악당이었습니다. 21세기형 첩보물의 전범이 된 '본' 시리즈에 이르면, 적이 사라져 존립기반을 잃어버린 미국의 정보 기관 자체가 악당으로 떠오릅니다. 이번주 개봉작 의 악당은 다국적 은행입니다. 인터폴 형사 루이(클라이브 오웬)는 전세계 190개국에 손을 뻗친 다국적 은행 IBBC의 비리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IBBC의 실체에 접근하던 동료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 더보기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어떤 지도자를 원하십니까. 지난 대선 때 각자 다른 후보의 이름에 기표했듯이, 원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시민마다 다를 겁니다. 하지만 대통령도 사람인지라, 시민 개개인이 꿈꿔온 완벽한 이상형의 지도자는 될 수 없겠죠.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는 각기 다른 국민의 바람을 최대한 넓게 수용할 배포와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전 세계로 시선을 넓힌다 해도 이런 지도자는 흔치 않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이 소수의 위대한 지도자에 속합니다. 4일 개봉하는 는 만델라의 집권 초반기를 그립니다. 배우 모건 프리먼은 만델라에 관한 영화를 오랫동안 구상했는데, 그의 삶 전체를 영화로 옮기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결국 그는 남아공 대표팀의 1995년 .. 더보기
영화 <클로이> 줄리앤 무어 줄리앤 무어(49)는 위기의 중년 여성입니다. 남편과 아이가 바깥으로 나도는 사이, 그녀는 홀로 집에 머뭅니다. 직업이 있든 없든 그녀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그녀는 섣불리 화내지 않습니다. 그녀의 차분함은 이중인격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선택은 늦지만 무겁습니다. 25일 개봉작 에서 무어는 다시 한 번 위기의 중년 여성이 됩니다. 캐서린(무어)은 능력있는 산부인과 의사, 남편 데이비드(리엄 니슨)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음대 교수입니다. 캐서린은 남편을 위해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데, 남편은 그날따라 늦고 맙니다. 이후 캐서린은 남편을 의심하고, 급기야 남편을 시험하기 위해 아름다운 고급 콜걸 클로이(어맨다 사이프리드)를 부릅니다. 데이비드에게 접.. 더보기
‘신화 없는 미국’의 콤플렉스가 보이나요 미국의 신화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처음 설계를 시작할 때부터 건물 한 채, 길 하나까지 의미를 가진 계획도시였습니다. 계단의 개수에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런 ‘강박적 의미부여’는 미국의 짧은 역사에 기인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의미를 가질 시간이 없었기에, 의미를 힘들게 만들어 낸 셈이지요. 11일 개봉하는 은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하고 삼지창을 든 거인이 뉴욕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 거인이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라고 말합니다. 형제 사이인 포세이돈과 제우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제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자신의 번개를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역정을 내면서 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