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를 본 뒤 몇 가지 논쟁이 있었다. 우선 김윤석과 그 일당이 맛있게 먹은 고기가 무엇인가. 돼지설, 개설이 오갔고. 심지어 사람설까지 나왔는데 설마. 아무튼 김윤석은 이 돼지뼈다구인지 개뼈다구를 들고 싸운다. <하몽하몽>에서 돼지 뒷다리 들고 싸우는 장면이 나왔다고 하는데, 아무튼 <황해>의 무기는 독창적이다. 

어떤 장면을 보면 그냥 "미쳤다"는 소리가 나온다. 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고 재미있기는한데, 누군가에게 선뜻 보라고는 말 못하겠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까봐.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인과 손잡고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나름 흥미진진하겠다.   

김윤석은 옌벤의 개장수다. 다크 포스가 물씬 풍긴다. 하정우의 표정이 불쌍하다.


<황해>의 등장인물들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개가 적당할 것 같다. 이 개 같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서로 물고 물리고 죽이고 잡아먹힌다. 때로 개들은 광견병에 걸려 필요 이상 난폭한 짓까지 저지른다.

실제 <황해>의 도입부에는 영화에서 유일한 내레이션이 나온다. 옌볜의 택시기사 구남(하정우)은 열 한 살 때 ‘개뱅’(개병, 즉 광견병)이 돈 얘기를 전한다. 병에 걸린 개는 제일 먼저 제 어미를 물었고 이후 아가리로 물 수 있는 건 모조리 물어죽였다. 며칠 뒤 삐쩍 마른 꼴로 나타난 그 개는 천천히 드러누워 죽었고, 구남은 개를 묻어줬다. 어른들은 그날 밤 묻힌 개를 꺼내 잡아먹었다. 구남은 다시 “개뱅이 돌고 있다”며 내레이션을 마무리한다.

구남은 절망적이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내는 여섯 달째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를 받기 위해 빌린 사채빚은 갚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그때 개장수이자 청부살인 브로커인 면가(김윤석)가 접근해 솔깃한 제안을 한다.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고 오면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구남은 돈을 벌고 아내도 찾을 겸 한국행 밀항선을 탄다. 그러나 구남이 죽이려는 대상은 눈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살해당한다. 구남은 몰려든 경찰에게 쫓긴다. 청부살인을 의뢰했던 태원(조성하)은 증거인멸을 위해 구남을 없애려하고, 이 과정에서 옌볜에 있던 면가까지 한국으로 넘어온다.

자동차 20대를 완파시키면서 이런 장면을 찍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

구남은 한국에 가면 찾을 수 있는 돈과 여자, 옌볜에 남은 자식 등 세 가지만을 생각한다. 그 외엔 생각하려야 생각할 수 없이 절박한 처지다. <황해>의 각본가·연출자인 나홍진은 ‘옌볜이 아니라 그 어떤 곳에 있는 남자들도 이 세 가지 욕망을 좀 더 세련되거나 단순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는 듯하다.

나홍진은 역시 하정우·김윤석과 함께한 전작 <추격자>에서 서울 강북 지역 주택가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황해>에선 공간이 확장됐다. 카메라는 옌볜, 동해, 황해, 울산, 부산, 서울을 오간다. 올해 최고 흥행작인 <아저씨>가 태국의 킬러를 초청했다면, <황해>는 옌볜의 살인 브로커를 끌어들인다. 폭력을 다루는 한국의 상업영화는 이제 한국 폭력배를 넘어 범아시아 폭력배까지 불러모으고 있다.

야생으로 살아온 옌볜의 조폭들과 온실에서 지낸 서울의 조폭들이 마주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구남이 홀로 동분서주하는 1시간가량이 지나면, 서울 조폭 태원이 등장하고 이어 옌볜 조폭 면가가 나온다. 서울내기들은 그 야생성에 금세 기가 죽는다. 태원이 애완견 두목이었다면 면가는 들개 두목이다. 들개들이 휘젓자 한국은 금세 개판이 된다.

<황해>는 그 개판을 표현했다. 화면에는 한국의 상업영화가 허용하는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열정 혹은 광기가 넘실댄다. 특히 몇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을 보고 나면 기가 빼앗기는 듯 힘이 든다. 관객이야 즐기면 그만이지만, 내심 스태프나 배우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의 장면이 이어진다.

얼굴에 "힘들다"고 써있다.

하정우는 <황해> 촬영에 대해 “군대 재입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밀항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3일간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도입부에 잠시 나온 뒤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김윤석의 연기는 <타짜>의 ‘아귀’급이다.

개는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저 생존하려 할 뿐이다. 개가 될 바엔 살아남는 개가 되려다가 도리어 죽음의 아가리로 기어들어가는 구남을 보면서 관객은 무엇을 생각할까. <황해>는 영혼을 정화하거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가 아니다. 도리어 세상의 비정함과 악함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한다. 주로 여자들이 토막 살해당한 <추격자>는 밸런타인데이, 남자들이 떼죽음당하는 <황해>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했다. 감독과 배급사도 참 짓궂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개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