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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작전명 발키리'

우리나라, 우리 민족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지만 싸우는 데는 이유가 있죠. 사랑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난 사랑을 줬는데 상대방은 그걸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요. 그래서 사랑은 골치가 아픕니다.

22일 개봉하는 <작전명 발키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발키리'란 용감한 전사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북유럽 신화 속 여신 집단의 이름입니다. 아울러 아돌프 히틀러의 유고시에도 나치가 권력을 유지하게끔 수립해둔 작전명이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차 대전의 패색이 짙어가는 독일, 충직한 군인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아프리카 전장에서 오른 손과 왼쪽 눈을 잃은 슈타펜버그는 베를린으로 돌아옵니다. 슈타펜버그와 일군의 정치인, 군인들은 히틀러를 제거해 독일과 유럽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려 합니다. 슈타펜버그는 직접 히틀러 암살의 행동책으로 나섭니다.

<작전명 발키리>를 스릴러로 본다면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슈타펜버그는 실패했고, 히틀러는 암살당하지 않았다는 결말을 관객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죠. 화끈한 전투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기에 2차대전 전쟁영화로 보기에도 힘듭니다. 톰 크루즈를 주연으로 한 액션영화도 아닙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유주얼 서스팩트>, <엑스맨>)은 슈타펜버그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지 차갑고 건조하게 그의 행동만을 시간 순으로 묘사할 뿐입니다. 불필요한 수식이 제거됐다는 점에서 김훈의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초반 30분 내로 영화의 분위기에 빠져 든다면 흥미진진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곤욕을 치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화는 히틀러를 미치광이나 악마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슈타펜버그가 히틀러를 처음 만나는 순간의 묘사도 그렇습니다. 비밀 별장의 널찍한 거실에서 열린 히틀러, 괴링, 괴벨스 등의 회합은 마치 유럽의 우아한 귀족 모임 같습니다. 역사의 기록을 살펴봐도 히틀러는 침착하고 결단력 있으며 자기 절제에 강한 지도자였습니다. 히틀러는 독일과 독일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천생 군인인 슈타펜버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형되면서 남긴 마지막 말도 "독일 만세"입니다. 하지만 군 최고 통수권자인 총통을 암살하려는 그의 행동은 군인이라는 신분이 요구하는 규율과 모순됩니다. 단지 둘의 사랑은 엇갈린 곳을 향하고 있었을 뿐이죠.

군인이라는 신분이 떠안는 의무를 생각한다면, 슈타펜버그는 자신의 사랑을 히틀러와 같은 방향으로 틀어야 했을 겁니다. 대부분의 '영혼 없는' 공직자가 그렇게 하죠. 하지만 슈타펜버그는 '반역자'라는 오명, 가족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가 정체성'을 바로잡겠다"는 말이 종종 들립니다. 광장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면 나라 사랑이 증명되는 줄 아는 세상입니다. 나라 사랑의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반역'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사랑≠지도자 사랑'이며, 국가 정체성은 특정 집단에 귀속되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지막이 울리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전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