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영화를 본 김에 내처 조너선 에임즈의 소설 '너는 여기에 없었다'(프시케의 숲)까지 읽었다. 소설이 나온 건 2013년인데 4년만에 영화화됐으니 상당히 빨리 진척된 셈이다. 영화가 89분으로 짧았는데, 소설 역시 152쪽으로 짧다. 분량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복잡한 미스터리를 감추어 두었거나 인물의 심리적 갈등을 몇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는 일은 없다. 하드보일드하게 직선적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결말이 난다. 심지어 '이제 절정부로 가겠군' 하는 순간에 끝나버린다. 속편을 염두에 둔 듯한 구성인데, 실제 속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소설의 확장판이 2018년 나왔다고 하는데, 원판의 결말에서 더 나아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소설과 영화가 다른 부분은,


-주인공 조의 트라우마의 근원이 조금 더 드러난다. 그런데 이건 소설과 영화의 차이라고도 할 수 없긴 하다.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통상 생략과 축약을 거치니까. 그러니까 소설에선 조의 트라우마가 활자로 좀 더 구체화됐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영화에서의 짐작대로 조는 군인이었고, 이후 FBI에서 성매매전담 요원으로 일했다. 아버지는 지독한 가정폭력범이었고, 아들 조를 떄리거나 아니면 아내를 때렸다. 

-영화 속 조가 시적인 킬러인 반면 소설의 조는 좀 더 실용적인 킬러다. 영화에서 조는 자신이 공격해 죽어가는 남자 옆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상당히 인상적인 장면), 어머니의 시신을 물에 떠내려보내기 위해 상복을 입고 강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소설에선 전자의 장면이 아예 없고, 어머니의 시신은 절벽 같은 곳에서 물에 던져버린다. 린 램지는 왜 조가 자기 총에 맞아 죽어가는 남자의 독백을 듣도록 했을까. 자기가 죽여놓고 종부성사를 하는 사제처럼 구는, 듣도보도 못한 살인자다. 

-무엇보다 피해자인 니나의 아버지 보토 상원의원의 성격이 크게 다르다. 소설 속 보토는 영화보다 훨씬 극악한 악당이다. 영화에선 딸의 성착취를 막아내지 못한 보토가 자살하지만, 소설에서 자살하는 것은 동료 상원의원이다. 오히려 보토는 정치적 야심을 위해 딸을 악당들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난다. 아버지가 악당이었으면 더욱 극적이었을텐데, 굳이 제3의 악당을 설정한 램지의 선택의 이유는? 

-영화에서 니나는 악당의 목을 면도칼로 베어 스스로 죽인다. 경호원 몇몇을 처리한 뒤 도착한 조는 결국 이미 죽은 악당을 발견할 뿐이다. 그때까지 엄청난 액션을 선보인 주인공이 악당을 직접 처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기존 영화의 관습을 어긴다. 하지만 소설에서 악당을 죽이는 것은 당연히 조다. 

-영화에서 구출된 니나는 조와 함께 낯선 식당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둘은 어딘가로 잠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 조는 아직 니나(소설에선 리사란 이름)를 구출하지 못했다. 보토 의원의 이마에 망치를 박아넣은 조가 리사를 데려간 조직을 처단하려는 의지를 다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마치 결말을 내지 않은 채 끝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선 소설의 결말이 비전형적이다. 결국 영화와 소설은 각기 다른 부분에서 전형성과 비전형성을 보이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