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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핑, 섹스봇, 신경개조, 감옥실험...'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마거릿 애트우드의 2015년작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원제 The Heart Goes Last, 위즈덤하우스)를 읽다. 전에 읽은 애트우드의 대표작 '눈먼 암살자'는 무언가 굉장히 복잡해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소설이었는데,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속도가 났다. 읽으면서 뭔가 빠트린게 있나 싶을 정도였다. 

경제 위기로 미국 사회가 '카드로 지은 집'처럼 붕괴한 근미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스탠과 샤메인 부부는 집도 직장도 없이 자동차에 의탁해 떠돌며 살아간다. 그런 부부가 흥미로운 광고를 접한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을 보장한다는 포지트론 프로젝트 광고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개의 마을로 구성됐다. 사람들은 한 달은 감옥에서, 한 달은 주민으로 살아간다. 한 사람이 한 집을 공유하며, 두 사람은 정확히 같은 날 입소하고 출소해 엇갈리게 살아간다.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 일로 몰락해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모습은 굉장히 개연성있게 그려졌다. SF라고 할 것도 없이, 경제위기를 겪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벌어질만한 일들이다. 부부가 포지트론 프로젝트에 자원한 이후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 듯, 판타지적인 구성이다. 여기부터는 사실성보다는, 일종의 사고 실험을 추구한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발현되는 인간의 가학 심리를 보여주는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연상케하는 설정이지만, 전개는 전혀 다르다.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는 의외로 제도적으로 구속된 부부의 마음 속 갈등과 욕망에 천착한다. 그리고 그 전개는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스탠과 샤메인 부부는 같은 집을 공유하는 다른 부부와 함께 일종의 스와핑 관계를 형성한다. 샤메인이 자발적이었다면, 스탠은 상대 여성에게 사실상 강간을 당했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스탠이 기계공학 엔지니어, 샤메인이 의료계종사자라는 점도 이야기의 전개에 한 발단이 된다. 스탠의 기계공학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섹스봇과 관련 있고, 샤메인의 의술은 장기밀매 혹은 임의의 사형집행으로 이어진다. 한 남자는 갓 주문한 섹스봇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흥분해 목을 물어뜯는 바람에, 로봇이 합선되어 섹스 자세 그대로 끼어있다가 겨우 구출된 뒤 남은 생을 불구로 살아갈 처지다. 뇌신경을 개조해, 수술 뒤 처음 마주친 사람과 무조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술도 등장한다. 수술당한 한 여성은 남성이 적당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그만 옆에 놓여있던 테디베어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고 살아간다(상당히 기괴한 유머다). 디스토피아 SF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자극적인 소재들이 급박하게, 차례차례 등장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애트우드가 자기가 쓰면서도 재미있을 정도의 통속적인 활극을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시리즈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시녀 이야기'를 읽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