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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나고 자라고 낳고 죽는다는 것. 오즈 야스지로와 <도쿄 이야기>

통상 일본영화 고전 황금기의 3대 거장을 꼽으면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를 드는데, 난 단지 <부운> 때문에 여기 들지 않는 나루세 미키오가 제일 좋고, 그 다음이 미조구치 겐지, 그 다음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동률이었다. 오즈나 구로사와의 영화가 나쁘다기 보다는, 그저 마음에 온전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변하면 감상과 논리가 달라지는지, 연휴 기간 중 짬을 내 다시 본 <도쿄 이야기>는 무척 좋았다. 시간을 두고 다시 봤을 때 새롭지 않다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다. 


영화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다다미 샷.   


세월은 얼마나 힘이 셉니까.  

일본을 넘어서 세계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는 1903년 12월 12일 도쿄에서 태어나 자신의 환갑날인 1963년 12월 12일 사망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한 해 전 별세한 어머니의 옆에 묻혔습니다. 검은 대리석으로 된 오즈의 묘표에는 ‘무(無)’라는 한 글자만 적혔습니다.


이 단정하면서도 기묘한 영화감독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의 대표작인 <도쿄 이야기>(1953)를 보면서 전 의문의 실마리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시골에 살던 노부부가 도쿄의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합니다. 장남은 실력있는 의사고, 장녀는 미용실 원장입니다. 자식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을 반깁니다. 하지만 일에 바쁘기 때문인지 도쿄 구경 한번 제대로 시켜드리지 못하고 나중엔 부모님이 머무시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노부부를 진심으로 대하는 이는 전쟁중 사망한 차남의 아내, 즉 며느리입니다. 노부부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신세를 지다가 결국 시골로 내려가고, 그 직후 평소 건강하던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위독해집니다.


착한 며느리 하라 세츠코.

부모를 박대하는 자식들을 비난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오즈는 상황을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장남과 장녀는 나이든 부모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해 보일지언정, ‘패륜’으로 비난 받을만큼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응급 환자가 찾아오거나, 집에서 회의가 열려 부모님을 편히 모시기 힘들 뿐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악당이 아니라 바쁜 사람입니다. 패전의 상처를 간신히 봉합하고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던 당시 평범한 일본인의 표상입니다. 

며느리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 남편이 죽은 지도 8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부모를 진심으로 모십니다. 시부모는 재가하라고 권하지만 며느리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며느리도 젊은 시누이에겐 숨겨뒀던 감정을 털어놓습니다. “그이를 생각하지 않고 지나간 날도 많아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도 차츰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때 폭풍 같던 감정이 오늘은 미풍입니다. 죽을 것 같은 세월을 보내고 나니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도쿄 이야기>의 자식들은 “무덤에 이불 덮어드릴 수 없지 않느냐”며 뒤늦게 불효를 후회하고 통곡하지만,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밤기차를 타고 도쿄로 향할 궁리를 합니다. 그러나 오즈에겐 가족 윤리를 해하는 현대 사회를 비난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영원히 머물 것 같던 무더위가 결국은 가고야 말 듯, 어떤 일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굴곡진 삶, 감정, 경험을 남김 없이 쓸어가는 세월은 잔인하고, 세월이 지나간 뒤의 풍경은 쓸쓸합니다. 자식들도 돌아가고, 아내의 상을 치른 뒤 홀로 남은 노인은 무표정하게 어딘가를 응시합니다. 노인에겐 오즈의 묘표에 새겨진 한 글자, ‘무’가 떠올랐을까요.


<도쿄 이야기>를 포함한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14편이 상영되는 회고전이 15일~10월 2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립니다. <도쿄 이야기>, <태어나기는 했지만>, <부초> 등 6편은 입장료가 없다고 합니다. 나고 자라 출산하고 출가시킨 뒤 홀로 남아 결국 돌아가는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즈 야스지로(1903~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