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신작 <십자군 이야기1>을 내놓았다. <십자군 이야기>는 올 가을과 내년 봄에 나올 2권과 3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2006년 <로마인 이야기 15>를 마무리한 뒤 내놓은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가 ‘쉬어 가는’ 듯했다면, <십자군 이야기>는 다시 본격적인 작업을 한다는 느낌이다. <십자군 이야기>는 지금까지 줄곧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내왔던 한길사가 아닌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해외의 유명 저자들을 둘러싸고 흔히 그러하듯, 이번에도 출판사간의 판권(료)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오노는 십자군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1077년 ‘카노사의 굴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의사에 어긋나는 인사를 감행했다. 격분한 교황이 황제를 파문하자, 황제가 교황이 머물던 한겨울의 카노사 성 앞에 맨발로 3일간 서서 용서를 빈 끝에 사면받은 사건이다. 대개의 역사학자들은 카노사의 굴욕이 교황권의 위세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지만, 시오노는 오히려 이 사건 이후 하인리히 4세가 독을 품고 교황을 압박했다고 본다.


수세에 몰린 후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꺼내든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황제에겐 없지만 교황에겐 있는 것, 바로 종교적 권위다.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우르바누스 2세는 대성당 앞에 모인 군중에게 ‘성전’을 소호한다. 반목하던 그리스도교 세계의 화합, 그렇게 모은 힘을 이슬람교도를 무찌르는데 쓰자고 말한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무력행사가 따르는 순례행’인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 것이다. 시오노는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라고 말한다.


틀루즈 백작 레몽,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등 1차 십자군 원정의 주역들과 그 활약상이 소개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선보였듯, 각 전투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덧붙여진다. 시작은 종교적 열정이었지만, 과정에는 당대의 온갖 정치·경제적 이해와 인간적인 격정 등이 끼어들었다. 부인의 등에 떠밀려 예루살램 행에 나선 제후도 있었고, 원군을 요청했다가 뒤통수를 친 비잔틴제국 황제도 있었다. 은자 피에르는 여성, 어린이를 포함한 ‘거지떼’를 방불케하는 군중을 이끌고 원정에 나섰고, 이 군중은 대부분 몰살당했다. 물론 그들은 이슬람교도의 칼이 목에 들어오는 순간, 천국의 환상을 보았을 것이다. 


먼지 쌓인 사료를 읽기 쉽게 서술하는 건 시오노의 분명한 특기다. 그러나 “위대한 아버지를 의식하는 정도는 묘하게도 아들보다 딸이 더 강하다”, “여자란 결혼상대를 고를 때는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 있고 신뢰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도 미워할 수 없는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다” 같은 단정은 어느 사료에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함께 나온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에 시오노의 설명이 붙은 형식이다. 송태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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