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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 예술가.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

지난해 <엘 시스테마>가 있었다면, 올해는 이 영화가 있다. 사회 속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거리를 준다.



영화가 시작하면 무용가로 보기엔 다소 뚱뚱한 사람들이 무대에 나와 몸을 움직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아마추어에 청소년들이다. 어떤 청소년은 “한 번도 춤춘 적이 없다. 배운 적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을 지도하는 이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1940~2009)다.


바우쉬는 2008년 특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978년 초연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콘탁트호프’를 14세 이상 청소년들을 기용해 공연한다는 것이었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이 청소년들이 ‘콘탁트호프’를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대단한 끼나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이가 아닌 다음에야 남들 앞에서 말로 표현하는 건 익숙하지만 몸으로 표현하는 건 쑥스럽다. 그러나 원래 인간은 말보다 몸짓을 먼저 갖고 있었다. 말이 많아지면서 몸짓이 줄어들었으니, 인간은 그만큼의 표현수단을 잃어버린 셈이다. 바우쉬는 청소년들에게 이토록 다양하고 즐거운 표현수단을 되찾아주려 한다.


청소년들은 당연히 서툴다. 이들을 주로 지도하는 이는 ‘콘탁트호프’ 초연 당시의 주연 무용수들. 이제 깊은 주름과 푸석푸석한 머리결을 가진 이들은 이 춤을 추던 30여년 전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머뭇거리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뛴다. 아이들은 뛰고 걷고 자기 얼굴을 꼬집고 손을 물어본다. 몸짓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면 몸짓이 고양된다. 전문 무용가가 아니면 알지 못했던 몸짓과 감정과 표현의 선순환 구조가 터득된다.




사실 ‘콘탁트호프’의 어떤 내용은 청소년들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목은 독일어로 ‘매음굴’이란 뜻이다. 누군가는 자살하고, 젊은 남녀는 옷을 벗는다. 전문 무용가 버전에서는 속옷까지 벗는다고 하는데, 청소년들은 속옷을 남긴다. 무용 교사들은 다그치지 않는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믿음이 쌓이기 전까지는 함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아직 접하지 못한 어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이해한다. 어른으로 연착륙한다.


바우쉬의 작품은 ‘무용을 위한 무용’이 아니었다. 바우쉬가 고안한 몸짓 언어 속에는 춤과 이야기, 무엇보다 삶이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따라서 바우쉬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의 삶을 산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은 무대 위에서 삶을 살고 이해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훌륭한 춤꾼이 된다.


결국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낸다. 바우쉬는 무대에 올라 10달간 고락을 함께한 청소년들에게 일일이 꽃 한 송이씩을 건넨 뒤 사라진다. 그리고 이듬해 가편집본을 본 뒤 세상을 뜬다. 자기 분야에거 경지에 오른 만년의 예술가가 해야할 일에 대한 좋은 사례를 남긴 채.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씨너스 강남,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20일 개봉한다.